“놀이와 체험교육 했더니 아이들이 확 바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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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체험교육 했더니 아이들이 확 바뀌더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02.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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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도 나선 윤병훈 ‘놀체인양업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양업고의 특별한 교육방식 사회로 확대 천명, 현재 학생 모집중
윤병훈 이사장
윤병훈 이사장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싶었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둔 학생들이 90년대 후반에 11만명이나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외국으로 유학갔던 아이들이 국내로 많이 들어왔다. 이들이 우리나라 교육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학교밖 청소년들이 15만명으로 늘었다. 공교육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성직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심을 한 사람이 있었고, 소원대로 대안학교가 탄생했다. 학교법인 청주가톨릭학원은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환희리에 양업고등학교를 세웠다. 지난 1998년 3월 개교해 2018년 2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까지 672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길러냈다.

양업고의 첫 주춧돌을 놓은 사람은 윤병훈(70) 전 교장이다. 윤 전 교장은 1996년 4월 1일 양업고 설립 계획을 구체화한 뒤 2년도 안돼 학교 문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들이 힘을 보탠 덕분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천주교청주교구와 충북도교육청은 윤 전 교장을 믿고 발벗고 나섰고, 옥산면 주민들은 응원했다고 한다.

그는 양업고 초대 교장에 부임한 이후 15년만인 지난 2013년 2월에 퇴직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또 다른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각계 각층 사람들이 양업고의 특별한 교육방식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자며 일을 도모했고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놀체인양업사회적협동조합(이하 놀체인협동조합)이다. 이 조합을 시작한 사람들은 윤 전 교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놀체인’은 놀이는 체험이고, 체험은 교육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다시 말해 ‘놀이를 통한 체험교육을 하면 인성이 좋은 쪽으로 바뀐다’는 게 핵심이다. 윤 이사장은 현재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에 놀체인협동조합 사무실을 마련하고 예비사회적기업을 준비 중이다. 지난 13일 사무실에서 윤 이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놀체인협동조합의 핵심이 ‘놀이, 체험, 인성’이라고 했는데 이는 양업고에서 검증된 교육인가?

“그렇다. 양업고 아이들에게는 아픔과 상처가 많았다. 안 그래도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시기인데 가정적으로도 행복하지 않아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선생님을 미워하고 기성세대에게 반발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왜 그렇게 할까 살펴보니 이유없는 반항은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들어 나도 혼내고 다그쳤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픔을 알고 난 뒤에는 그들의 대변자가 돼 기다리고 보듬어줬다. 술과 담배에 쩔어있는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압교육을 하지 않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학부모교육을 했다. 한편으로는 놀이를 통한 체험교육을 실시했다. 지리산 종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만주벌판 체험, 노작교육, 봉사활동, 해병대 체험, 그 외 성장을 돕는 각종 프로그램을 했더니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 이 학교에는 일반 학교가 엄두도 못 낼 프로그램이 많다. 윤 이사장이 쓴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초기에 양업고는 문제아학교로 불렸고 학생들은 술, 담배, 오락에 탐닉했다고 한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부모가 찾아와도 피했다는 것. 수업시간에는 자고 밤에는 몰래 PC방을 들락거리는 학생들, 단체로 야외에 나가면 사라지는 아이들, 걸핏하면 싸우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는 이보다 더 한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학교설립 7년만에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구체적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졌나

“놀이와 체험을 통해 자존감을 살려주는 교육을 꾸준히 했다. 그랬더니 국내 기행을 갔다 오면 다음에 어디 갈거냐고 흥미를 보였고 만주벌판 체험을 다녀와서는 ‘마음이 넓어진 것 같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또 해병대 체험 후에는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다’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흡연터를 없애겠다고 했다. 흡연터는 흡연을 장려하기 위한 게 아니고 학교 여기저기에 꽁초 버리지 말고 최소한 여기서만 담배 피우라고 학교에서 만든 것이다. 어느 날 아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자유가 아니고 방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더니 무섭게 공부에 매달렸다. 동시에 양업고가 좋은 학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좋은 학교는 학생들이 만드는 것이다.”

- 책을 보니 양업고 졸업생들이 찾아와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실제 많이 찾아왔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말썽 피우던 아이들이 의젓한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돼서 나타났다.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많다. 나는 현재까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14번 다녀왔다. 교원 임용고시 세 번 떨어지고 포기했던 한 졸업생이 나와 함께 다시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공부를 시작하더니 합격했다. 한 졸업생은 호주에서 영어를 익히고 현재는 인도 발리에서 서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학생은 대학을 가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했다.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수많은 고통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 인생을 더 알차게 사는 아이들을 여럿 봤다.”
 

- 학생들을 상자에 가두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거나 윽박질러서는 안된다. 교실에 갇혀 있지만 일방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에 관심없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도 강요를 계속한다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부모와 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미래에 대한 답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교육은 정형화돼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큰 문제다. 법대를 나와 고시패스를 못하면 시험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시험에 떨어져도 스스로 진로를 정해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이 시대에 다른 길은 생각을 못하고 판검사, 공무원, 교사를 공식에 대입해 놓고 사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에게 이 상자를 부수고 나올 수 있는 에너지를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말 끝에 윤 이사장은 “그룹 BTS를 만든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해 서울대 졸업식에서 ‘남이 만들어놓은 행복을 추구하지 마라. 무엇이 진짜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라’고 말했다. 나는 양업고에서 한 때 망가졌던 아이들이라도 고정화된 시각으로 보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놀체인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종 목표는 아동·청소년들이 자기주도적이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행복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들에게 놀이와 체험활동을 제공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할 것이다”

- 그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야 할텐데

“아동·청소년 자기주도형 사업으로 숲체험, 전통시장 체험, 노작, 문화·예술·진로·역사·미디어콘텐츠 교육이 있다. 다분야 통합체험 사업으로는 미술, 음악, 신체놀이, 요리,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 심리상담, 부모교육, 행복한 가정 만들기, 자연체험, 놀이체험 등이 있다. 네팔 안나푸르나·인도·중국에서 하는 해외 현장체험과 교사연수 및 힐링 프로그램도 할 계획이다.”

한편 놀체인협동조합은 지난해 2월 설립 준비모임을 하고 6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8월에는 교육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고 10월 26일 청주 산남동에 문을 열었다. 이사와 감사, 자문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조합원 및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윤 이사장이 천주교 신부를 지냈지만 종교와는 무관하다. 현재 첫 정규반 학생 40명을 2월 말까지 모집하고 있다. 교육비는 별도 문의바람. 대상은 초중고 12~19세 아동 및 청소년이고 교육기간은 올 3월~내년 2월이다. 수업은 토요일에 한다.

윤병훈 이사장은?
교사 출신, 1983년 사제 서품 받아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너 맛 좀 볼래!> 등 출간

윤병훈 이사장은 교사 출신이다. 부모님 또한 교사를 지냈다. 그는 충남대 농대를 졸업하고 광주 가톨릭대에 편입, 동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교원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는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충주 교현동, 청주 옥산, 청주 산남동 천주교회 주임신부와 청주교구 총대리 신부로 일했다. 양업고 교장 일 때는 교장선생님보다 신부님으로 더 많이 불렸다. 사제 서품을 받은지 올해로 37년이나 됐고 지난 2017년 사목 일선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교육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도 많이 탔다. 2002년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장, 2010년 대통령 ‘국민 교육발전 기여부문’ 정부포상 및 표창, 2012년 옥조근정 훈장, 2013년 포스코 청암재단의 ‘포스코 청암교육상’, 2016년 충북단재교육상 등. 청암교육상과 단재교육상 상금을 양업고에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윤 이사장은 글을 틈틈이 써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너 맛 좀 볼래!> <발소리가 큰 아이들> <‘그분의 별’이 되어 나를 이끌어준 아이들> 등의 책을 펴냈다. 자신의 신앙과 교육철학, 양업고의 특별한 교육 경험, 그리고 거기서 만난 아이들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그는 근엄한 신부님처럼 보이지만 만나면 농담, 일명 ‘아재 개그’를 잘 해서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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