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전염병은 어떻게 경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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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전염병은 어떻게 경주했나
  • 충청리뷰
  • 승인 2020.03.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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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와 한제국을 충격에 빠뜨린 안토니누스 역병
교통 네트워크 따라 미생물 확산, 제국 멸망의 일등 공신 역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갑작스레 중국, 중동, 이탈리아를 덮쳤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고, 일부는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사망했다. 마치 전염병의 전격전과도 같았다. 이 전염병이 놀랍도록 빠르게 광범위한 지역에 도달할 수 있던 것은 그 이전부터 착실히 닦이고 있던 세계화의 고속도로 덕분이었다. 때문에, 바이러스 창궐 이후 광범위한 규모로 펼쳐지던 상업, 경제 활동이 위축된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 번 교류가 위축되고 나니, 상호의존적 세계에 살던 각국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진 것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는 매일 뉴스로 접하는 2020년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약 1800년 전인 165년, 고대 로마와 한제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안토니누스 역병(Antonine Plague)의 이야기다.

거대한 네트워크가 실어나른 미생물
안토니누스 역병은 사실 작금의 코로나19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 질병이었다. 천연두로 추정되는 안토니누스 역병이 절정이었을 때는 로마 시에서만 하루 2000명이 죽었다고 한다. 대륙 반대편의 한제국도 사정은 비슷했다. 코로나19가 심각하긴 해도, 숫자만 보면 감히 안토니누스 역병에 비할 바가 아님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질병은 세계화를 통해 퍼져나갔고, 질병 확산의 결과로 세계화가 위축되었다는 중대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대로 말이다.

물론 1800년 전의 세계에 인터넷이나 비행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계화를 서로 다른 인간 집단의 연결망이 더 먼 곳으로 촘촘하게 뻗어 나가고, 그 결과로 인적, 물적 교류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서기 2세기는 유례없는 세계화의 시대가 맞았다. 로마와 장안은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뉴욕, 도쿄, 베이징과 같은 장소였다. 이들 도시는 마치 오늘날의 세계도시처럼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사치품을 열렬히 원했으며, 교역망 바깥에 존재하던 사람들을 네트워크의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문제는 이 거대한 네트워크가 단순히 비단, 향신료, 사람만 실어나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각 사회는 그동안 비단, 유리, 향신료뿐 아니라 서로 독자적인 미생물상을 발달시켜왔다. 이런 미생물들이 교역로를 타고 면역을 갖춘 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사회로 전달될 경우,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국 발전의 초석이 되어준 교통 네트워크가 역설적으로 제국 멸망의 일등공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1800년 전 안토니누스 역병의 전말이다.

 

그 이후에도 세계화와 전염병은 서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주를 이어갔다. 전염병에서 회복한 인간 사회가 다시 교역로를 부활시키고 번영을 누리면 그 길을 타고 다시 전염병이 발병해 네트워크에 타격을 가했다. 안토니누스 역병의 으뜸가는 후계자는 그런 의미에서 14세기의 흑사병이라고 할 만하다. 몽골제국이 만들어낸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세계화 네트워크를 타고 유라시아 전역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편에 가담한 인터넷
하지만 세계화와 전염병의 경주는 흑사병 이후 다른 국면에 진입한다. 파국을 겪은 뒤 유라시아 농경사회는 질병에 대해 이전보다 더 높은 적응력을 확보했다. 이것이 재앙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유라시아 농경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는 면역을 그만큼 축적하지 못했기에 일방적으로 유라시아의 미생물 병기에 얻어맞아야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내륙 아시아 유목민, 태평양 민족들이 그렇게 궤멸적 타격을 입고 때로는 아예 절멸되었다. 유라시아 네트워크는 그야말로 지구적으로 확장되었고, 세계화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후 근대 과학과 국가 행정의 힘을 입어 세계화 측은 사실상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발전하면서 그 이전 어느 때보다 사람, 상품, 미생물이 세계 각지를 오갔다. 인도 갠지스강에서 역시 교역로를 타고 세계로 확산된 콜레라는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세계화에 대한 미생물의 반격일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과학과 보건 행정 역량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반격은 곧 진압되었다. 마침내 유럽인들은 황열병, 말라리아 등 열대 미생물의 저항으로 막혀 있던 곳도 근대 의학의 힘으로 밀고 들어갔다. 열대 아프리카에도 세계화가 강제되면서 드디어 세계화와 미생물의 경주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항공기와 고속철로 연결되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세계화 네트워크를 갖춘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화의 길을 따라 다시 질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바이러스의 우군들이 더 있다. 먼저 세계화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인터넷이 바이러스의 편에 가담했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전염에 대한 공포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고,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고 가면서 전체 네트워크의 활력을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온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반발 또한 바이러스의 효과를 증폭시켜줄 것이다. 끝으로,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이 지난 40년 동안 세계화를 이끌던 가장 강력한 기수였다는 점도 세계화 측에 불리한 소식이다.

코로나19가 세계화에 대한 미생물의 전통적 반격을 부활시켰다고 하는 것은 아직 섣부른 단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활동으로 인해 요동치는 생물권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생물이 더 치명적 반격을 시작할 시나리오 정도는 앞으로도 계속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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