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상태바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 정명숙
  • 승인 2006.06.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 물결이 출렁이는 남녘 들판에는 보랏빛 자운영이 곱게 피어있다, 아름답게 꽃을 피우지만 잠시뿐, 파종기가 되면 갈아 엎어져 거름으로 돌아가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자운영,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기꺼이 꽃이기를 포기하는 자운영의 고운 자태를 바라보며 내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로 관광을 떠났다, 행선지를 정하고 버스를 예약하고 먹 거리를 준비하느라 부녀회원들이 수고한 덕에 어른들의 표정이 환하다, 버스가 출발하자 몇분은 썬 그라스를 멋지고 쓰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멋진 여인과 남자로 앉아있다, 지난 세월 속에 구구절절했던 사연과 자식 손주걱정은 모두 잊고 오늘 만큼은 그저 한 사람으로만 있고 싶은 것일까, 운전기사는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틀어주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식 농사가 이미 끝나 깊어진 가을 같은 비움의 단계에 와 있는 노인들, 열락과 고통, 사랑과 미움, 만남과 이별도 수없이 겪고 이젠 죽음까지도 담담하게 받아 드릴 준비를 하는 어른들의 표정이 오늘은 생동감 넘치는 봄날같다, 성격 좋은 부녀회장의 유머로 차 안은 온통 노랫소리와 박수소리 웃음소리로 가득해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여수에 도착해 점식식사후 향일암을 향했다,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따라나선다, 그러나 관절이 약해진 노인들에게 가파르고 계단으로 되어있는 산길은 힘겹기만하다, "예전에는 높은산도 훨훨 날아 다녔는데 앞 만보고 살다보니 좋은날은 다 가버리고 늙고 아픈데만 많아지네, 그래도 더 기운빠지면 이렇게 경치 좋은 절은 구경도 못 할터인데 올라가 봐야지." 농담반 진담반 웃으며 나누는 얘기지만 머지않아 똑같은 길을 가야하는 나는 옆에서서 빨갛게 떨어진 동백꽃을 바라보다 멀리 푸른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안쓰럽다, 젊은날로 되돌릴 수 있다면 돌려드리고 싶다.

모든 삶은 생로병사를 겪는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소멸되는 유한한 인생여정, 우주의 티끌같은 존재에 불과한 사람인지라 지나온 과거가 행복했거나 또는 불행했더라도 대자연의 섭리는 결코 거역할수도, 비켜갈 수도 없으니 그대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것이 삶의 지혜일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또 다시 여흥이 시작되었다, 같이 동행했던 부녀회원들은 지쳐 가는데 어른들은 어디서 그 많은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일까, 참으로 경이롭기만 하다, 한분이 마이크를 잡고 목청 높혀 노래를 부르신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꽃다운 나이에 가정을 이뤄 아이 낳아 기르고 가르쳐 혼사 치러주며 겪었을 지난했던 세월을 뒤로한체 이젠 당신할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는 편안함과 삶에대한 깊은 연민과 열정을 간직하고 연륜많큼 쌓인 지혜로운 모습이 청춘으로 돌아간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차안의 풍경이 들판을 가득 메운 자운영의 꽃 무리와 겹쳐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