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은 별을 가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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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은 별을 가두지 못한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07.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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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공동묘지, 그 주검의 아파트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샤일록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고리대금업자로 독자들의 지탄을 받는 악역이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이었다.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은 늘 악역이었다. 문학뿐만 아니라 여타의 기록에서도 유대인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왜일까?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또한 무어라 설명해야 되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학살 행위는, 누군가는 돈밖에 모르는 족속이라 하여 그렇게 되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종교적 우월주의가 자초한 불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걸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너무나 오랜 세월 가혹한 차별과 핍박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 지구’는 그에 대한 증명의 하나일 뿐이다. ‘유대인 지구’는 프라하의 네트나 공원과 구시가지 광장 사이에 있다. 유대인들이 프라하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무렵, 이후 13세기에 이르러 로마제국은 이 유대인들을 일정한 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는 담장을 쌓아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그 구역이 바로 지금의 ‘유대인 지구(ghetto)이다.

유대인 공동묘지 앞에서
유대인 공동묘지 앞에서

 

입장하자마자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온 벽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작은 글씨였다. 히틀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으로 77,297명이라고 한다. 2층에도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까막눈인 나로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차별의 상징이었던 별 배지도 있었고, 그것을 가슴에 달았을 아이들의 사진도 있었다. (실내 촬영이 엄격히 금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래 사진은 인터넷 캡처)

유대 어린이
유대 어린이
유대인 표지인 별 배지
유대인 표지인 별 배지

 

밖으로 나오니 나를 맞이한 건 유대인 공동묘지였다. 1만 2천 개나 된다는 비석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다. 처음에는 비석들이 너무 촘촘하여 무덤이 아니라 전국에 있는 비석을 수집해 놓은 비석 전시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죽어서도 유대인 지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묻은 곳에 또 묻고, 그 위에 또 묻고 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무려 12층까지 포개어 묻은 곳도 있다 하니 그저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그건 주검의 아파트였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아들과 손자, 또 그들의 아들과 손자가 묻히고 또 묻히는.

비로소 별
-유대인 묘지

죽어서도 우리는
이 지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죽어서도 우리는 여기에 묻혔고
또 죽어서도 그 위에 묻혔다
우리의 육신은 그렇게
층층이 쌓이고 쌓여
대대손손 썩고 썩어갔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이랴
우리보다 먼저 우릴 묶었던
족쇄가 푸르게 썩기 시작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이 지구를 벗어날 수 있었으니
비로소 별이 되어
궁륭 한복판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으니
어떻게 저들은 그걸 알고
일찌감치 우리의 가슴에
별을 달아 주었던 것일까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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