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가득한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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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 가득한 초대장
  • 충청리뷰
  • 승인 2020.07.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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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열투어’를 통해 경북 문경에 다녀왔다. 그래서?

 

“모든 출발은 ‘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재열투어’를 기획한 시사IN 고재열 기자의 말이다. 그는 최근 ‘국내 최초 여행 감독’이란 스스로 만든 타이틀을 가지고 독립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판짜기에 능한 그의 두 가지 사심이 결합된 ‘여행자 플랫폼’을 기획했다. 여행자 플랫폼의 대상은 90년대 학번 중심의 ‘3050’세대다. 사심은 힘이 셌다. 여행자 플랫폼은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자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그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들의 팬심을 고취시키며 느슨하고 단단하게 구축 중이다.

# 재열투어 in 문경
얼마 전 ‘재열투어’를 통해 문경을 다녀왔다. 청주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다. 문경은 문경새재의 도시다. 한 해 약 300만 명의 관광객이 문경새재를 방문한다. 그러나 ‘재열투어’는 문경새재를 가볍게 건너뛰고 다른 장소들을 소개했다. 문경새재만 보고 가는 문경이 아니라, 문경새재 없는 문경의 ‘1박2일’이었다. 그리고 장소의 혼(Genius Loci)을 만들어 가는 지역 전문가들이 곳곳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리솔 최원경과 하소라의 콜라보 무대.  / 사진=재열투어
마리솔 최원경과 하소라의 콜라보 무대. / 사진=재열투어

 

첫째 날은 도시재생사업지 화수헌과 산양정행소를 관리하는 리플레이스 대표로부터 도시청년시골파견사업과 화수헌 소생기를 듣고, ‘오미나라’에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시음하며 와인 명장 이종기 박사로부터 술 인문학을 들었다.

이튿날에는 경북무형문화재 미산 김선식이 동행하여 한국다완박물관과 가마 작업장을 둘러보았고, 작업장 마당의 정자에서 열린 차회에서 미산의 찻사발에 차 전문가 김세리가 격불한 말차를 마셨다.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의 연주와 창은 차회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해질녘에는 단산에 올라 경관에 취하고, 노을을 배경으로 플라멩코 무용가 마리솔 최원경과 하소라의 가야금 콜라보 무대를 감상했다.

그 사이 지역발전을 위해 서울과 문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재생사업을 추진하는지, 외지의 역량 있는 청년들과 지역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힘을 모으고 있는지, 지역의 양조산업은 어떤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과 선순환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버려진 양조장은 어떻게 지역의 인스타 성지로 재현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사업이 아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풍성해지는 이야기이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고 응시해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었다. 문경새재를 가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문경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 도시의 외부자들
‘재열투어’는 문경 투어의 요소를 분절하고, 새로운 요소들을 조합하여 여행자 플랫폼의 기획 투어를 준비 중이다. 오미나라 이외에 JTBC ‘캠핑클럽’을 통해 효리맥주로 떠오른 가나다라브루어리, 무형문화재 홍승희 장인이 만드는 문경주조, 그리고 ‘희양산공동체’의 우렁이쌀로 막걸리를 빚는 두술도가를 묶는 ‘주류탐사’, 음식 페어링을 중첩시킨 ‘술로미식회’ 당일 투어가 그렇다.

그 뿐이랴. 나도 지인들을 초대해 문경에 갈 예정이다. 문경 투어에 참여했던 여행자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페이스북에 문경을 다녀왔다는 소식들로 타임라인이 분주하다.

도시는 누가 만드는가, 라는 질문은 쉽다. 그러나 답하기는 만만치 않다. 지역 주민은 두루뭉술하고 빤하다. 지역의 일에 마음 기울이고, 시간을 들이는 주민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재열투어’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일에 열정을 들이는 도시 안 사람들과 도시 밖 외부자들이 서로 연결될 때 긍정적 에너지들이 어떻게 커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번질 수 있는 지 경험한 것이다.

도시 경계를 넘어 도시 밖 외부자들을 어떻게 도시의 일에 초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실험과 이 실험들을 주도해 갈 사심 많은 기획자들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 여행을 매개로 도시를 유영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이다.

미산 김선식의 작업장에서
미산 김선식의 작업장에서. / 사진=재열투어

 

# 재열투어 in 청주
이 글 또한 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문경을 알아가는 방식으로, 누군가 청주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출발로 ‘재열투어’를 청주로 초대하고 싶은 사심이다. 청주의 명소들을 재발견하고, 그 곳에 혼을 불어넣는 사람들과 지역 예술인과의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면 1박 2일로도 부족한 ‘재열투어 in 청주’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재열투어’를 통해 확산되는 청주여행 네트워크는 어떤 힘을 발휘할까. 청주의 문화와 관광의 접점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낸다면 ‘노잼도시’가 아닌 몇 번이고 오고 싶은,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접한 괴산, 옥천, 보은 등과 연계하면 다양한 루트의 2박 3일 ‘재열투어 in 충북’도 얼마든지 가능할 테다.

현암사에서 대청호 파노라마 즐기기/ 문의 마불갤러리, 이종국 작가의 한지와 캘리그라피/ 남일면 고은리 고택에서의 차회/ 마동창작마을 이홍원 촌장과의 대화/ 국립청주박물관~산성 옛길~상당산성 남문까지 트레킹과 성곽 콘서트~신선주 복합문화공간 ‘이음’/ 대성로 122 근대 문화 산책(문화동 우리예능원, 대성비디오, 가람신작, 충북 문화관, 청주 성공회성당 외)/ 정북동토성 노을과 인생사진/ 청주 미술관 투어(문화제조창C, 국립현대미술관-동부창고-우민아트센터-충북문화관과 숲속 갤러리-청주시립미술관-라폼므현대미술관-마동창작마을-운보의 집). 또 무엇이 있을까.

숨어있는 또는 숨기 좋은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충청리뷰 독자들의 제보(urbanlove@korea.kr)가 필요하다.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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