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많은 이원종 지사 흔들리는 충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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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많은 이원종 지사 흔들리는 충북 정체성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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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결국 이원종지사가 한나라당에 안겼지만 여전히 난관에 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인의 업보다. 이원종식 리더쉽, 이른바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결단력 보다는 숙시주의(熟枾主義) 취향의 유선형 지도력을 구가하던 이지사가 형이하학의 정치판에서 한 때 중심을 잃은 것이다. 소수정당의 비애를 힘들게 감내하던 JP가 이지사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도민들에겐 큰 당혹감으로 다가 온다.
지난 14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민련 소속이었던 이지사 집무실로 떼지어 찾아가 입당을 권유한 것은 굳이 자민련이나 민주당의 논리에 따르지 않더라도 정당 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충북은 엉뚱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른바 정체성의 훼손이다. 그 근거는 “이런 일이 과연 영남이나 호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자괴감에서 출발한다. “지사가 어느 당을 택하건 그건 자유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상황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밖에서 충북을 어떻게 생각할지 심히 걱정스럽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교수의 진단은 더 냉혹하다. “돌발적이었든 혹은 각본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백주에 공개적으로 도지사 집무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유린(蹂躪)이나 다름없다. 한번 생각해 봐라. 한나라당의 주장은 앞으로 정권을 창출할 정당에 몸담아 도정발전을 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무례는 없다. 정권이 무슨 기차표 예약하듯 자기들 마음대로 쥘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런 논리라면 앞으로 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은 모두 한나라당으로 가야 할 판이다. 자민련과 민주당이 나서서 떠들게 아니라 도민들이 분개할 일이다. 조잡하고 수치스럽다.”
그는 또 “도지사가 여론을 따랐다는 주장도 그렇다. 지금 모든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많아야 30%대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 70%는 뭐란 말인가”라고 흥분했다.

이지사의 도박,
성공은 아직 미지수

자신의 문제가 JP에 의해 중앙 정치권으로 비화되면서 이지사는 엄청난 손해를 봤다. 설령 한나라당으로 옮김으로써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지사에 대해 각인되고 있는 이미지는 자칫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수 있다. “도민들의 입장에선 지난 4년간 모나지 않은 도정을 이끌어 온 공과(功課)가 변색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인 문제에 너무 휘둘리는 것같아 안타깝다.
사실 지난 4년간 이지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98년의 당적변경 논란이다. 그런데 또 이 문제로 발목이 잡혔다. 바벨탑을 쌓으면 뭣하는가. 선출직은 바람 한번 잘못 타면 헤어나기 어렵다. 박찬종이 그랬고 이해찬이 그러했다. 빨리 파문이 가라 앉아 지방행정의 수장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한 전직 공무원은 말했다.
약 1년전부터 이지사의 당적문제가 구체적으로 불거지자 많은 측근과 지인들은 “끝까지 기다리라”고 주문했다. 사실 도지사 후보로서 자신 외에 확실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지사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자민련은 물론 한나라당 민주당마저 이지사 외엔 다른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특정인 한 사람-그것도 이미 특정 정당 소속인-을 놓고 이렇게 3당이 서로 자기쪽 후보라며 아전인수의 집착을 보인 것도 희한한 일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21세기형 선거문화”라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이지사의 시간벌기 전략은 정치의 가변성을 너무 가볍게 여김으로써 막판 자가당착에 빠졌다. 한 측근의 얘기는 이에대한 전후사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지사의 자민련 탈당과 관련해선 측근 및 지인들 사이에서도 찬반으로 엇갈렸다. 비록 탈당하는 쪽으로 비중이 실렸어도 시기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 결국 관건은 명분이었다. 명분을 찾기 위해선 확실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JP에게 정면 승부를 걸어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탈당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실제로 이지사는 몇 번의 기회를 통해 JP에게 대안 마련을 요구했다. 선거는 다가 오는데도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 자민련에 대해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화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명분으로 탈당을 결행하기엔 부담이 컸고, 때문에 고민하던중 한나라당 박근혜의원이 정치판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박근혜 변수가 없었다면 탈당이 빨랐을 개연성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선 아주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JP의 속셈은 따로 있다 !

지난 14일 한나라당의 중앙 당직자들이 이원종지사 집무실을 방문, 입당을 권유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JP는 격노했다. JP는 다음날 직접 청주를 방문, 이를 문제화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JP는 청주에 내려오는 대신 중앙당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자청, 이 문제를 전국 이슈화했다. 정치적 돌파구를 찾던 JP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요즘처럼 자민련의 얘기가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등장한 적은 최근 없었다. 만약 JP가 15일 청주에 내려 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여차하면 JP와 이지사간에 마찰음이 터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정치 9단임을 자처하는 JP가 이를 모를리 없었고, 결국 빌미를 주지 않는 대신 오히려 역이용한 것이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날(15일) 우리당의 도내 지구당위원장들이 도지사실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JP가 내려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만약 서로 부딪칠 경우 모양이 안 좋겠구나 판단했다. 그래서 그쪽에 확인해 봤는데 계획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지구당위원장들이 도지사실을 방문, 입당을 권유했다. 만약 JP가 내려 왔으면 이지사에겐 오히려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이지사는 이미 여러 차례 JP와 자민련에 자신의 입장을 천명한 것으로 안다. 대안 마련을 강력 주문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지사 나름대로는 자민련 탈당을 위한 명분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믿는다.”

도의원들의 명분은 엿장수 맘대로

16일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이 도지사실을 방문, 선배 정치인들을 그대로 모방한 처사야 말로 가히 희극적이라는 평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도의원의 신분을 망각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의원은 도정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그런데 도의원들이 이지사를 주군으로 모시겠다는 건지 참으로 헷갈린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끼리끼리 물말아(?) 먹겠다는 얘기 밖에 더 되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한나라당 도의원들은 대부분 자민련 소속이었다가 지난 99년말 호남고속철도 기점역 파문 때 집단으로 탈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탈당 명분은 자민련이 충북의 숙원인 호남고속철도 오송기점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은 이런 명분의 연계선상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한나라당이 오송기점역의 완전 해결은 아니더라도 의지 정도는 천명해야 이들의 입당이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입장은 “어차피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난제”라는게 전부다. 충청리뷰는 지난 연말 지역 인사들의 한나라당행이 점쳐질 때 이미 이들 도의원들의 입당은 정치적 명분을 상실했다는 기사(209호)를 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샀다. 충북의 정체성을 흐트리는데는 위 아래가 따로 없다.
/ 한덕현기자


이지사의 승부수, 위기는 곧 “기회”
“이럴땐 정공법이 최고다”

당적이라는 암초에 걸린 이원종함(艦)의 구난책은 과연 뭘까. 예기치 않은 정치적 구설수를 탄 이지사는 19일 한나라당 입당으로 여전히 소용돌이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말많던 당적을 정리했지만 이지사는 지금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일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시쳇말로 자민련에 남아도 탈, 탈당해도 탈이었던 이지사가 결국 한나라당을 택했지만 향후 헤쳐가야 할 전도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난마처럼 얽힐 경우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바로 정공법이다. 과거 YS가 즐겨 쓰던 비책이다. 복잡한 상황에선 개개 사안에 대한 변명과 접근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말(言)이 말을 불러옴으로써 당사자에게 족쇄를 더할 뿐이다. 달변인 이지사는 앞으로 이 점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쪽으로만 생각하면 된다.
이지사는 이번 당적 파동과 관련,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그동안의 논란은 사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언론과 주변에서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이 문제에 대해 본인은 지나칠 정도로 말을 아꼈고 조심스러워 했다. 때문에 앞으로 철새 내지 정통성 시비에 시달릴 이지사는 일단 한번 정리된 입장을 시종일관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공법은 ‘솔직함’이 전제돼야 성과를 거둔다. 거두절미한다면 이지사는 좀 더 편한 재선을 위해 당을 바꾼 것이다.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도민과 유권자를 팔았다간 자칫 자기 발목만 잡힐 수 있다.
지금 이지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변의 조언이나 위로가 아니라 본인의 `다잡음’이다.

광주 혁명이 대전에서 진압됐다. 지난 17일 민주당 이인제후보가 대전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많은 식자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날 선거인단은 이인제 고문에게 67.5%라는 몰표를 줘 바로 전날 광주에서 선두로 나섰던 노무현 고문을 일단 일일천하로 내려 앉혔다. 이날 노무현은 이인제의 4분의 1 수준인 16.5%를 얻는데 그쳤다. 16일 광주의 경선에선 예상을 깨고 영남후보인 노무현이 37.5%를 얻어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여론과 언론들은 한국정치의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깨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크게 반겼다. 그러나 그 ‘싹’이 하루만에 잘린 것이다. 이인제 캠프는 대전에서의 압승에 쾌재를 부르면서도 향후 이 결과가 다른 지역의 투표에 어떤 결과를 미칠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 이렇게 말했다. “광주에선 두 사람이 똑같이 30% 대의 표를 얻었다. 호남의 심장인 광주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아마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많은 유권자들이 그 순간 만큼은 선거에 대해 아주 균형된 시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하룻만에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향후 파장이 어떨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방적 표쏠림 충북에선 곤란

충북 역시 이인제 후보의 입장에선 안방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같은 충청권인데다 이곳에 대한 조직 장악력이 다른 후보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인제는 도내 민주당의 공조직 대부분을 꿰차고 있다. 홍재형도지부장은 명실상부한 이인제계열이고 김근태고문과 정치적 동지관계를 이뤘던 청주 흥덕구 노영민위원장도 김고문의 후보사퇴로 이고문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홍익표 청원지구당위원장과 이용희 보은 옥천 영동지구당위원장, 이근규 제천 단양지구당위원장도 친 이인제계다. 이원성 충주지구당위원장과 김진선 괴산 진천 음성지구당위원장은 자신들이 특정 계파로 분류되는 것에 일종의 알레르기를 갖고 있지만 역시 이고문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게 당내의 정설이다.
결국 민주당 공조직 전체의 책임자가 이고문과 직간접으로 연관된다는 얘기다. 당의 한 관계자는 “물론 도지부와 지구당은 대선후보 경선에 엄정 중립을 지킨다. 그러나 조직 책임자의 성향에 따라 약간의 변수는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해 대전의 경선 결과에 나도 놀랐다. 이인제후보가 얻은 67.5%의 득표는 분명 지역구도에서나 나올 수 있는 표의 쏠림 현상이다. 경선은 아직 초반전인데 만약 이런 추세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면 이후보에게도 결코 득될게 없다. 충북에선 그야말로 인물 위주의 소위 황금분할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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