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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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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08.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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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폭염·산불·태풍은 지구가 막다른 길로 들어섰음을 암시

 

한때는 온 지구가 서식지였다. 서식지는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다. 먹이를 얻고 은신처를 구하고 생식을 위해 짝을 찾는 지역이다. 서식지는 이제 콘크리트로 덮였다. 도시기본계획이나 공원녹지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생태축’을 설정한다. 「자연환경보전법」은 생태축을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고 생태계 기능의 연속을 위하여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연결하는 생태적 서식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중요한 도심의 산이나 녹지는 듬성듬성 잘려나가 ‘축’이라기보다 차라리 ‘섬’에 가깝다. 천은 복개된 지 오래다. 서식지를 잃은 종의 개체수는 줄거나 결국 멸종된다. 인간의 본래 서식지는 어디인가. 콘크리트 속 인간은 안전할까. 인간이 파괴한 서식지는 결국 인간 개체수 감소와 멸종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곳곳에서 세계 기후 재앙 발생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막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그랜덤 연구소의 책임자인 밥 워드의 말이다. 코로나가 주춤하더니 긴 폭우가 시작됐다. 폭우가 지나가니 폭염이 시작되고, 다시 코로나가 창궐한다. 기후 변화가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으로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 헬기 등을 동원해 화재 진압에 힘쓰고 있는 소방관들. /뉴시스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 헬기 등을 동원해 화재 진압에 힘쓰고 있는 소방관들. /뉴시스

 

작년 9월부터 6개월 동안 지속된 호주 산불은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를 얼마나 증가시켰을까. 북극의 온도 38도,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산불은 300여 곳에 이른다. 2050년 바다 얼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최근 2035년으로 수정됐다. 동아시아가 폭우로 고통 받는 동안 유럽은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다. 이라크 바그다드는 관측 사상 최고치인 51.8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연간 이산화탄소량 450ppm이 생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지구 곳곳의 대홍수, 폭염, 산불, 슈퍼 태풍, 허리케인의 재난 상황은 지구가 이미 마지노선을 지나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음을 암시한다.

# 우리는 지구를 살리고 싶다
최근 과학자들은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넷제로(Net Zero.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 수준으로 줄이지 않을 경우 더 큰 피해가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혜윤 작가는 책 <아무튼, 메모>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그토록 많은 도움을 받았던 아름다운 세상이 파괴되는 것이 슬프다” 그래서 그는 곧 ‘기후 위기 예보’ 방송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기후 위기 예보에는 빗소리, 바람소리, 파도 소리, 새의 날개짓 소리, 믿을 수 없이 다양한 온갖 생명의 소리들, 우리에게 많은 밤 위안과 평화를 주었던, 그러나 사라져가는 소리들이 담길 것이다. 지구를 살리고 싶다는 목소리가 고맙다. 하지만 그 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무엇이 가능할까.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올해 2월 ‘15분 도시(Ville du quart d’heure)’ 계획을 발표했다. 개념은 간단하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내에 직장, 교육, 쇼핑, 의료, 문화시설 모두를 접근가능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5분 도시는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걷는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이다.

이 계획은 팬데믹 이전에 발표되었으나, 코로나 시대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도시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걷는 도시는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하고 더 쾌적하고 이웃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는 혁명적 계획이자, 오래전 우리가 이미 그리 해왔던 생활양식이기도 하다.

# 도시라는 서식지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6개 탱크에 모아 공항에서 쓰는 물의 절반 정도를 빗물로 처리한다. 환경파괴 금지 재단(Stop Ecocide Foundation)은 환경 파괴를 국제 범죄로 규정하는 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굴벤키안 인도주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상금 중 일부는 환경파괴금지재단에 지원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복개하천을 모두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부 하천은 직강화 이전으로 복원한다고 하니 도시에서도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경기도는 임대주택 이외에 일반분양을 위한 녹지 훼손이나 택지개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도로는 보행과 자전거길로, 주차장은 도시 텃밭과 자연형 놀이터로, 공장식 밀집사육은 농장 사육과 방목으로 대체된다면. 충분한 폭원과 다양한 수목의 생태이동통로가 조성되어 완전하게 연결된 녹지축을 갖게 된다면. 일정 비율이상 벽면 녹화, 옥상 녹화를 의무화한다면. 도시는 인간에게 안전한 서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라면 사라졌던 생물종들도 다시 도시로 찾아오지 않을까. 콘크리트 더미의 도시가 아니라 도시가 서식지가 될 때 비로소 우리가 지구를, 지구가 우리를 살릴 수 있다.

 

‘*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이자, 정혜윤 작가가 <아무튼, 메모>에서 다시 인용한 문구이다.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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