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조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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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0조가 뭐길래
  • 충청리뷰
  • 승인 2020.08.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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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헌법 제10조에 주목했다. 헌법 제1조는 노래로 만들어져 불릴 정도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하고 가치있는 헌법 제10조는 생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경축사의 의미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최소한 헌법 제10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헌법학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헌법 제10조가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의미는 심오하다. 1962년 제3공화국헌법이 조항을 도입했다.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결과 대통령 권한대행 박정희의 공포로 제정된 헌법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채택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후 이 조항은 우리 헌법의 핵심이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헌법학자 중에는 제10조를 우리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으로 꼽는 이가 적지 않다.

다른 조항이 그러하듯 이 조항도 우리나라의 발명품이 아니라, 서구로부터 계수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처음으로 규정한 헌법은 1949년 독일 헌법(정확한 명칭은 서독 기본법)이었다. 심지어 독일 헌법은 헌법의 가장 처음, 그러니까 제1조 제1항에 인간의 존엄 규정을 두었다. 당시 독일이 처해 있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 규정의 취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은 패전국이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은 나치 치하에서 집단학살, 생체실험 등과 같은 참혹한 만행에 조력하거나 최소한 침묵했다. 많은 사람들은 치욕에 몸서리쳤을 것이고, 다시는 그 같은 행태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독일 헌법 제정 훨씬 이전부터 유명한 말이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독일의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역설했다. 그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말로 표현하려 했던 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목적성’이다. 우리는 항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선택하고 활용한다. 그런데 인간은 목적이 되어야만 하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을 짐승보다 못하게 대우하고, 사용하고, 그리고 죽였던 독일인들의 과오를 참회하기에 인간의 존엄이라는 말보다 적합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비단 집단학살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을 탄압하거나 선동하는 일, 또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 소비자나 경제적 약자를 속이거나 위험으로 모는 일은 우리주변에서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한 해 1000명 가량 그러니까 하루에 2-3명꼴로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 우리나라는 헌법 제10조의 명령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한 세상, 그러니까 누구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그러나 쉽지 않기에 ‘이상’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된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궁극적인 이상으로 설정했다. 헌법의 나머지 모든 조항은 심지어 민주공화국이나 국민주권 조차도 이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헌법 제10조가 우리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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