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검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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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와 검소에 대하여
  • 충청리뷰
  • 승인 2020.08.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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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지난 6월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셨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에콜로지(ecology)를 미국에서 접한 뒤 우리나라로 돌아와서는 녹색평론이란 잡지를 창간해서 발행하는 일을 통해 생명운동과 환경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 오셨는데 지난 6월 25일 갑작스레 세상을 뜨신 것이다.

왜 나는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분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여지없이 선생의 죽음 앞에서 더 많이 선생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 공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죄스런 마음을 느낀다. 더구나 이번 선생의 죽음은 온 세계가 코로나19라는 광풍과 맞서 싸우는 가운데 만나고 보니 슬기롭게 이 위기를 대처할 길을 가르쳐 주실 큰 힘을 잃었다고 느꼈기에 더욱 황망하고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쩌랴. 그래도 선생께서는 격월간으로 30여 년간 펴내신 잡지 <녹색평론>을 남겨 놓으셨고 단행본도 여러 권 남겨 놓으셨기에 선생이 그리울 때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답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으니 그나마 선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아무리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혼란스럽고 우울하게 하고 있지만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을 나만의 방법으로 추모하는 일조차 안할 수는 없었기에 그분이 남겨놓고 가신 책들을 어루만지고 넘겨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잡지 <녹색평론>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기도 하고 단행본도 넘겨보다가 이반 일리히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반 일리히는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사제였고 문명비판가라는 건 알고 있었고 글도 띄엄띄엄 읽어본 기억은 나는데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김종철 선생의 글에서 그 이름이 자꾸 나오니까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 전부터 우리 삶에 필요한 변화를 요구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몇 가지 개념에 눈길이 갔는데, 그게 ‘한계’와 ‘검소’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삶은 한계를 모르고 달려왔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빨리’라는 구호를 통해 한계를 모르는 무한한 욕망을 부추겨 왔고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렇지가 않다. 우리 삶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알고 순환을 통해 한계를 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우리 뿐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의 후손들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너무 분명한 사실을 깊이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한계를 알고 살아가려면 만나게 되는 개념이 ‘검소’다. 일리히가 말하는 검소는 궁상을 떨자는 게 아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함께 삶’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검소한 사람은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체험하며 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검소’는 기존의 관계를 무조건 끊거나 자신을 폐쇄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토마스 아퀴나스도 ‘검소’는 우정의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토마스는 ‘검소’를 모든 쾌락을 배제하지 않고, 다만 인간관계를 타락시키는 괘락만을 배제하는 덕(德)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검소’는 그것을 초월하고 내포하는 더욱 미묘한 덕인 기쁨 명랑 우정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까 검소해야 기쁨 명랑 우정을 나누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내가 운영하는 길동무도서관에서 6개월간 ‘생명독서-작은 도서관, 기후위기를 말하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독서동아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활동하고 있던 독서동아리지만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긴 시간 책을 읽는 시도는 처음 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주제가 이 시대가 고민해야 할 것이었고 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 사업이라 흔쾌히 받아들여서 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 많은 글을 읽고 생각하고 가능한 실천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기반은 역시 김종철 선생과 이반 일리히가 말하는 한계를 알고 검소한 삶을 사는 데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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