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대통령님! 이 난국을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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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통령님! 이 난국을 어찌할까요
  • 한덕현
  • 승인 2020.09.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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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누군가 비아냥거렸듯이 꼭 220년만의 환생이다. 여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해찬이 현 정권과 문재인 대통령을 추켜세울 의도로 지난해에 이어 얼마전에도 정조대왕을 언급했다. 최근들어 입이 특히 거칠어진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이 정도의 ‘워드’는 양반인데도 때가 때인지라 여러 뒷말들이 나왔다.

정조는 세종과 함께 조선왕조의 2대 성군으로 꼽힌다. 성군 중에서도 으뜸으로 추앙되는만큼 이들에 대한 기록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세종이 한글창제라는 한 가지 대업만으로도 원초적인 기림을 받는 반면 정조는 온갖 역경을 극복하면서 나라를 잘 다스린, 어찌보면 기득권에 대한 투쟁의 리더십이 후세인들에게 어필한다는 점이다. 정조의 난데없는 등장은 여당의 눈엔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력이 그 때와 비슷하게 여겨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20년전의 인물이 호출되는 것을 보면 생뚱맞게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개혁정치로 왕권을 강화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정조대왕 하면 우선 떠오르는 건 그가 비운의 사도세자 아들로 태어나 불과 11세에 생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고 이를 계기로 권력에 대한 나름의 내성을 키워 왕에 오른 뒤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점이다. 서얼을 인재로 등용하고 비록 사노비는 손도 못대고 공노비에 국한됐지만 노비제도를 폐지했는가 하면 요즘으로 치면 국정농단이라 할 수 있는 외척과 세도정치를 척결하고 선대의 탕평책을 계승, 인물 위주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그야말로 나라에 ‘공정’의 가치를 우뚝 세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첫돌 잔치에서 다른 노리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가만히 앉아 책만 펴들고 읽었다는 정조는 순수 학문을 증진시켜 당시 조선의 최대 악폐인 파당(派黨)을 극복하려 했으며 탕평책을 쓸 때도 의리와 신의를 특별히 존중해 임금과 백성에 대한 충정의 공복(公僕)문화를 확산시켜 말 그대로 조선의 부흥기를 구가한 것이다.

그러나 그도 말년엔 ‘고이면 썩는다’는 권력의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개혁을 미완으로 남긴 채 49세로 단명하고 만다. 부친인 사도세자의 신원(伸寃)에 집착한 나머지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수원성(화성)을 쌓느라 정사를 소홀히 함으로써 급기야 나라의 곳간을 바닥냈다는 백성의 원성까지 사게 된다. 또한 궁예의 관심법을 연상시키는 군주도통론(君主道統論)을 내세워 왕인 자신이 의리의 주체임을 자처하며 반대파들을 겨냥, 강경책을 밀어붙였지만 되레 역풍을 맞고 힘을 잃는다. 제 아무리 성군이라도 자기 눈의 들보는 잘 보지 못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조처럼 역사에 성군으로 기록될지는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권력은 유한하고 그리하여 국민이 등을 돌리면 그 누구도 이를 누리지 못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이해찬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제외하곤 정조 이후 220년동안 개혁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면서 진보가 앞으로도 최하 20년을 집권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를 확신시킬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근자의 각종 사건과 추문들을 보면 진보의 가식, 진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뿐이다.

 

늘 상대성의 정치에서 영원한 선(善)은 없다. 진보라고 해서, 또 보수라고 해서 그들만이 나라를 잘 이끈다는 단언은 착각을 넘어 망언일 뿐이다. 어느 한 인간이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보수적 가치도 필요하고 진보적 가치도 필요하다. 진보의 태두 리영희도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했다. 선진국이 보수와 진보를 왔다갔다 하며 정권을 교체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리적 변화가 아닌 그 당시 삶의 본질에 있어 최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7, 80년대에 민주화투쟁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평생, 죽을 때까지 옳은 삶을 살 거라고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고 사람도 변한다. 이해찬의 말대로 보수가 두 세기 동안 이 나라를 통치하고 박정희가 산업화를, 전두환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해서 그들이 그토록 숱하게 죽인 양민들이 잊혀지는 건 아니다. 이들의 원혼을 생각한다면 보수는 앞으로 죽어도 정권을 잡으면 안된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정조같은 성군이 될 자질이 있다면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우선 자기 국민에 대한 국가권력의 폭력과 만행이 사라지고 있고 남북대결을 악용한 파렴치한 국민기망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남북 평화는 아직도 멀었지만 형이하학적인 북한의 도발이 줄어들고 있는 건 분명한 성과다. 보수측은 미국 및 일본과의 외교가 파탄났다고 아우성이지만 아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나라다운 체면을 지킨다고 평가할만한 여지가 많다.

말이 나온 김에 그동안 세기를 관통하며 한반도를 희롱했던 희대의 거짓말을 증오하려 한다. 과거 독재, 권위주의 정권에서 툭하면 불거져 나오던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원한다’는 이른바 한국민을 호구로 보는 립서비스다. 미국과 일본은 절대로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고 최근 그들의 기밀문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그저 자기들 ‘장사’와 안보를 위한 기회의 땅일 뿐이다. 그런 두 나라가 기회만 되면 전쟁과 무역을 겁박하며 우리나라를 농락하려 한다. 무역분쟁을 일으키는 일본에 대해 “앞으로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역으로 겁박한 문재인 대통령의 호언은 이래서 맞는다.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얘기하는 것도 허구다. 김일성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평화통일은 말장난에불과하다. 우리가 원하는 건 북한에 의한 불의의 도발과 전쟁에 대한 억제이지 단 시간내 평화가 아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한의 민주화가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축출, 제거로 그 싹을 틔우며 이뤄졌듯이 북한도 마찬가지다. 3대 세습과 이를 등에 업은 특권층들이 북한 내부적으로 종식돼야 통일이 가능하고 이를 촉발시키는 게 DJ의 햇볕정책이다. 그러기에 흔들림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현 정권의 스탠스는 옳다.

조국 윤미향 박원순 오거돈 나경원 윤석열 이상직 박덕흠 민경욱 전광훈 등등. 이들의 사례만 봐도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없다. 정작 국민들이 바라는 건 이념과 진영의 프레임에 갇히는 갈라짐이 아닌 상식의 가치, 상식의 도덕성, 상식의 공정, 상식의 인간성을 발휘하는 정치와 통치에 기대려는 안김일 것이다.

정권의 재창출과 탈환을 간절히 원하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220년만에 환생한 정조가 깨우칠 것은 따로 있다. “사람은 언어로 한 때의 쾌감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는 미천한 마부에게도 일찍이 이놈 저놈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바로 정조가 신료들에게 한 말이다.

마부는 고사하고 상대 당의 대표와 대통령까지도 동네 강아지 다루듯 막말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알리려는 요즘 정치인들은 정조를 닮기는커녕 애초보터 싹수가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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