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교장과 고려인 후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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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교장과 고려인 후손의 만남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10.08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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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봉명동 일대 초등학생 대상 온마을돌봄사업
손주 같은 아이들 공부부터 생활예절까지 가르치다

[청주행복교육지구-마을, 아이를 품다]3-월드휴먼브리지돌봄공동체
 

청주 봉명동에는 러시아문화권 아이들이 모여 산다. 봉명초의 전교생 약 400명 중 삼분의 일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고려인 할아버지를 둔 부모들이 봉명동에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타국행을 택했기 때문에 아이들 양육은 부모들에게 늘 힘든 숙제였다.

전국적인 봉사단체인 월드휴먼브리지는 다문화 아이들의 학습 및 사회적응을 위한 공동체 운영을 기획했다. 청주시에는 상당교회를 주축으로 월드휴먼브리지 단체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상당교회 집사이자 전 진천교육장을 역임한 이돈희 씨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퇴직 후 4년여 만에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기로 한 데는 친구이자 이미 지난해부터 청주행복지구 온마을돌봄사업을 벌이고 있는 송문규 전 교장의 조언이 컸다.

청주교육청의 한참 후배들 앞에서 이돈희 대표는 월드휴먼브리지돌봄공동체의 비전과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뭐가 부끄러운가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 대표는 생각보다 질문이 너무(?) 꼼꼼했다고 평했다.

1월부터 공동체 활동이 시작됐다. 봉명초에 다니는 초등학생 12명이 현재 월드휴먼브리지돌봄공동체를 다니고 있다. 러시아 말을 하지만 아이들의 국적은 다 다르다. 아이들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에서 왔다.

언어 통역을 맡고 있는 고려인 림까자리나씨도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그는 한국에 온지 1년도 안 된 학생들이라 아직 한국말이 많이 서툴다. 5년 전 쯤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올해부턴 이곳에서 아이들을 매일 돌보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림까자리나씨는 코로나19로 잠시 행복교육지구 사업이 중단됐을 때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서 집에만 있었다. 돌봄교실이 열려야 아이들이 이곳에서 간식도 먹고 친구도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드휴먼브리지돌봄공동체엔 러시아 말을 하는 아이들 12명이 있다. 고려인 림까자리나(사진 맨 왼쪽)씨도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그는 돌봄교실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돕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월드휴먼브리지돌봄공동체엔 러시아 말을 하는 아이들 12명이 있다. 고려인 림까자리나(사진 맨 왼쪽)씨도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그는 돌봄교실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돕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친구들이 교사로 나서

 

이돈희 대표는 퇴직한 친구들을 돌봄공동체로 이끌었다. “수학, 과학을 전공한 교사들이 수업을 맡고 있다. 사실 멀리서 오면 차비도 나오지 않는 일이다. 때로는 미안해서 가끔 밥을 친구들에게 산다. 솔직히 나 혼자서 공동체를 이끌 수는 없다.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선뜻 이 일을 맡게 됐다. 혼자라면 감당할 수가 없다.”

10명 정도의 교사 경력자들이 강사로 나서 수업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탐방, 동화구연, 영어, 생활과학, 캘리그래피 등을 가르친다. 인근에 있는 수신 태권도 학원 관장 또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다.

이 대표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는 마음을 배운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다보면 어느새 부쩍 자라있듯이 아이들도 사랑을 머금고 성장한다. 러시아 언어권에서 왔지만 각자 국적이 다르다. 돌봄교실에 온 아이들은 모두 고려인 후손들이다. 더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봉사하는 손들 많아

 

상당교회에선 매일 아침 교인들이 새벽에 순번을 정해서 공동체가 사용하는 공간을 청소한다. 온마을 돌봄교실이 사용하는 서원구 사직대로 85 건물 5층 또한 월드휴먼브리지에서 후원해주고 있다. 월드휴먼브리지는 아이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전영원 씨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생활과학 수업과 안전지도를 맡고 있다. 전 씨는 퇴직 후 아이들과 다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돌봄교실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처음 한국의 말과 문화를 배우고 있다. 이 대표는 아이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아이들은 한국의 인사법이 아직 낯설기 때문에 몸소 시범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그 모습을 금세 따라한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이러한 돌봄교실이 법적으로 정례화되면 좋겠다. 아파트가 지어질 때 돌봄공간도 의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돌봄공간을 운영하면 된다. 돌봄교실을 운영하다보니 이러한 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체감하게 된다.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 탁상공론만 계속되는 것 같다. 아이를 낳아도 현실적으로 키우기가 힘들지 않나. 청주행복교육지구 사업도 아직은 시범단계다. 더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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