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묻는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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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묻는 시간을
  • 충청리뷰
  • 승인 2020.10.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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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현 농부 작가
최성현 농부 작가

 

가을걷이로 바쁜 때라 손님도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수녀님도 우리 집에 머문 18일부터 21일까지의 3박 4일 내내 우리와 함께 일했다. 함께 양파 모를 심고, 수수 이삭을 털었다. 함께 보리와 밀 씨앗을 뿌렸고, 들깨를 털었다.

수녀님이 어떻게 3박4일이나 농가인 우리 집에 와 지낼 수 있었을까? 그 수녀님이 속해 있는 수도원에서는 7년마다 한 차례씩 두 달간의 휴가가 주어진다고 했다. 수도회 법규에는 수녀원, 혹은 천주교 조직 안에서 그 두 달을 지내게 돼 있지만 특별 청원을 통해 바깥에 나와 지내고 있다 했다. 그 두 달 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특히 농촌에 다니며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있다고 했다. 우리 집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수녀님은 사흘 내내 끝없이 물었다.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했다. 조금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때로는 우리가 손님 같았다. “수녀님의 열정이 부럽네요.” 아내의 감탄이었다. 수녀님은 아내보다 한 살 위였다. 동년배인 셈인데, 그 나이에도 자신의 길을 직심스럽게 열어가는 모습이 아내의 마음을 흔든다고 했다. 그런 삶의 태도가 어디서 오는지를 아내가 수녀님에게 물었다.

“우리가 환경을 너무 많이 망가뜨렸잖아요. 더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손에게 죄를 짓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제가 가야 할 길을 만났어요.”

수도 생활 가운데 그런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생태적인 삶, 친환경 농업이 삶의 기둥이 됐다고 했다. 수녀님의 열정은 수녀님의 삶의 목표라고 할까, 소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3년제 농업 전문학교에 가서 배웠어요. 도시에서만 살아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수녀님은 학교를 마친 뒤, 작은 텃밭이 있는 빈집을 얻어 시작했다. 생태 공동체로 키워가는 게 목표였다. 얼마 뒤에는 이웃집도 얻을 수 있었다. 1천 평의 밭이 딸린 집이었다. 다른 수녀님 두 분이 동참했다.

“저희도 같아요. 흔들려요. 늘 한 마음을 지켜가기가 어렵지요. 어디나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도 여러 어려움이 닥쳐오고요.” 그럴 때 7년마다 주어지는 두 달은 귀하다.

“두 달 가운데 한 달은 성서를 읽으며 보내게 돼 있어요. 성서 통독이라고 하는데, 구약과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요. 그렇게 성서를 읽으며 기도를 해요.”

“한 달이면 성서를 통째로 한 번 다 읽을 수 있나요?” “읽을 수 있어요. 다른 일 없이 오로지 성서를 읽으며 기도만 하니까요.”

그런 시간을 나도 갖고 싶었다. 성서는 크나큰 보물창고 아닌가! 최고의 인생 교사가 아닌가! 그렇게 한 달을 보내면 어떤 식으로든 인생을 보는 눈이 자라날 것이 틀림없었다. “재충전이 돼요. 달리 말하면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눈이 떠져요. 그러면 힘이 나지요.”

농부에게는 겨울 농한기가 있다. 비닐하우스 재배와 같은 겨울 농사를 하지 않는 한 11월부터 3월까지는 겨울방학이다. 특히 12월부터 2월까지의 석 달 동안은 거의 일이 없다. 그 때가 기다려진다. 석 달 가운데 한 달을 떼어내어 수녀님들처럼 성경을 통째로 읽으며 지내볼까? 아니면 그 수녀님처럼 두 달간 견학의 수도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총 9년의 교육 과정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와 같이 모든 성인에게 안식년, 달리 말하면 자기개발 휴직을 의무화하면 어떨까? 모든 국민이 1년에 한 달은 무조건 쉬고, 6년 일하면 1년 쉰다. 그것을 필수로 하자는 거다. 그렇게 노동법을 바꾸자는 거다. 벌써 그렇게 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 시간은 나의 성장만이 아니라 국격을 높이고, 코로나19의 극복을 비롯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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