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악성민원인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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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악성민원인과의 조우
  • 권영석 기자
  • 승인 2020.11.04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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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악성 민원인과 마주친다. 처음 언론에 발을 디뎠을 때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대학동문인 한 선배 기자는 자기 지역 악성 민원인에 대한 얘기를 무용담처럼 말했다. 누군가는 동사무소에 찾아와 돈 안주면 안 간다며 발가벗고 드러누워 생떼를 부리고, 또 누군가는 자기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다 부수겠다며 민원실에 삽을 들고 쫓아오는 등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몇 년 생활하다 보니 나 역시 그런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물론 발가벗는 사람들은 없다. 다만 좀 더 세련된 척하는 점잖은 악성 민원인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직접 관공서를 찾아가기보다는 언론을 이용하려고 든다.

청주에도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 기자입장에서 이들을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다. ‘점잖은 악성민원인중에는 색다른 정보를 갖고 오는 이도 많다. 그래서 가끔은 이들과 기자 간의 관계가 악어와 악어새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다양한 부류의 이들을 만나 면면을 알아가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들도 처음에는 그저 사회정의를 부르짖던 민원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처한 상황들로 인해 현실에 실망했고, 나중에는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절대 정의라는 위험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고, 언론이 자기편을 들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기들이 주장하는데 왜 언론이 귀담아듣지 않냐며 되레 따진다. 이들의 제안을 거절한 언론사들을 향해서는 별 해괴망측한 소문을 재생산해 퍼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올해도 취재를 하며 그런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때로는 시달리기도 때로는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런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을 깨닫지 못했다. 지켜보던 선배 기자는 이들의 말을 다 무시할 수도 다 들어줄 수도 없다는 모호한 조언을 남겼다.

이들의 주장 가운데는 파장이 큰 사실이 꽤 많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이들은 스스로 수집한 데이터를 논리정연하게 분석할 정보와 지식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자료를 제시하며 이렇게 기사를 써야 한다고 훈수까지 둔다. 기자입장에서는 취재하기 편한 이들이다.

다만 일부는 도가 지나쳐 음모론으로 확장돼 취재가 허사가 되는 일도 있어 아쉽다. 대부분은 논리 비약으로 사소한 것을 놓쳐 방향이 크게 어긋난다. 이런 상황을 볼 때면 이들이 너무 자신의 관심사에 매몰돼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그래서 친해진 몇몇 민원인에게는 사건이 해결된 이후 정신보건의와 상담도 권했다.

가끔은 이들이 정신을 차리면 참 좋을 것이라는 망상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의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활동함으로써 경직화된 지역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다. 다만 조금만 현실적인 방향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논리를 펴나가면 청주시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이 좀 더 쉽게 풀릴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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