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거리 · 광장 · 공원을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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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거리 · 광장 · 공원을 살려라”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0.11.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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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시의 조건’ 번역한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
청주 중앙로에서 만난 반영운 교수
청주 중앙로에서 만난 반영운 교수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지에 가면 광장이나 공원이 많아 놀란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긴다. 또는 자전거를 타거나 가벼운 운동을 한다. 구시가지에는 어김없이 광장이 있고, 도심에는 공원이 있다. 이 대목에서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번역한 ‘위대한 도시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광장이나 공원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된다. 반 교수가 최근 이 책을 번역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는 미국 예일대 건축학부 겸임교수이며 뉴욕의 계획 및 설계회사 AGA Public Realm Strategists, Inc.의 사장겸 CEO인 알렉산더 가빈이 지은 ‘What makes a great city?’를 번역했다. 작년 봄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로부터 이 책을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반 교수는 ‘지속가능한 도시계획’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탐나는 책이었다고 말했다.
 

구겐하임박물관이 바꿔놓은 빌바오

책을 넘겨보면 우리가 원하는 도시가 그 곳에 다 있다. 사진만 봐도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알렉산더 가빈은 여기서 세계적으로 위대한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를 보여준다. 그는 스페인 빌바오·마드리드,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휴스턴·미니애폴리스·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 등을 위대한 도시의 예로 들었다.

반 교수는 원저자가 갔던 곳을 다시 가보고 위대한 도시가 되기 전·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친절함과 치밀함을 높이 샀다. 알렉산더 가빈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도시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아니고 시민·공무원·전문가·기업 등이 힘을 합쳐 오랜시간 살기좋은 도시로 만든 곳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의 골자는 바로 이 것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해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 도시가 위대하다는 것. 그래서 세계적으로 위대한 도시는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다.

반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쇠퇴한 도시를 부흥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공공장소의 활성화라는 점을 깨달았다. 즉 거리·광장·공원 등의 공공장소를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며, 그 곳에서 각자가 원하는 활동을 방해받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알렉산더 가빈은 위대한 도시의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스페인 빌바오에서 찾았다. 경제적 무능력 도시인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박물관 분원이 생기면서 크게 달라졌다. 도시의 삶을 향상시켰고, 관광지가 됐으며, 경제가 일어났다. 관광객들도 크게 늘었고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온다. 빌바오의 이런 현상은 하나의 박물관만으로 생긴 게 아니고 시에서 대중교통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거리와 광장 및 공원을 개선했으며, 환경오염 제거와 강변 재개발에 투자한 결과라는 것이다. 공공장소에 투자하자 빌바오는 더 살기좋은 도시가 됐다는 얘기다. 여기서 원저자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도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반 교수는 알렉산더 가빈이 위대한 공공장소의 특징으로 꼽은 6가지에 대해 들려줬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곳, 모두에게 소중한 곳, 시장수요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곳, 성공적인 도시화의 기본틀을 제공하는 곳, 정주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곳, 시민사회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의 아름다운 거리. 사진/ 알렉산더 가빈
스페인 빌바오의 아름다운 거리. 사진/ 알렉산더 가빈

 

미국 맨해튼의 브라이언트 공원. 사진/ 알렉산더 가빈
미국 맨해튼의 브라이언트 공원. 사진/ 알렉산더 가빈

 

변화 시작한 청주시 중앙로

원저자는 특히 스페인 살라망카의 마요르광장이 누구나 찾을 수 있고 접근성이 좋으며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광장에 하루 종일 앉아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는지 시간대별로 조사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은 도시의 거의 모든 곳이 광장에서 15분 이내 거리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좋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미국 맨해튼의 브라이언트 공원은 쓰레기들이 뒹굴고 부랑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이었으나 1991~1995년 개조해 지금은 아주 쾌적한 곳이 됐다고 한다. 빌딩숲 사이에 있는 이 공원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쉰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이 등장한다.

한편 반 교수는 폐허였던 청주시 중앙로를 현재의 모습으로 바꿔놓은 사람이다. 그는 “2006년부터 학생들과 중앙로 현장조사를 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청주시 공무원들과 함께 ‘도심활력증진지역사업’을 신청하고 사업비를 확보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중앙로번영회와 소나무길 만들기를 추진해 지금은 유동인구가 늘고, 빈 점포가 사라졌으며 부동산 가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실제 이 곳은 인도를 넓히고 일방통행로를 만들어 걸어다니기가 괜찮다. 아예 자동차 통행을 막는다면 더 좋겠지만 아직 그렇지는 않다. 리모델링한 상점들은 젊은층이 좋아하는 카페, 음식점, 옷가게, 술집 등 다양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반 교수는 지난 29일 이 곳을 걸으며 상전벽해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의 변화를 반가워하며 “청주신청사가 들어서고 중앙시장을 현대화하면 신청사-청주역사-청소년광장-중앙시장이 하나로 묶일 것이다. 청소년광장을 더 확대하면 광장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로가 더 활성화되지 않겠나”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반 교수는 공공장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명운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또 공공장소를 활성화 하려면 보행로, 녹지, 경관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청주시에는 자랑할 만한 거리와 광장다운 광장, 공원다운 공원이 없다. 반 교수도 이 점에 동의하며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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