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이제 숲에 주목하라
상태바
충북, 이제 숲에 주목하라
  • 한덕현
  • 승인 2020.11.11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난 주말 충북언론인클럽(회장 변우열)이 주관한 국립 세종수목원 견학행사에 동행했다. 한 달여전에 개원한 이후 그동안 몇 번 언론보도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직접 가보니 모든 게 부러웠다. 드넓은 면적도 그렇고 무엇보다 도심 가까이에 식물과 숲을 주제로 한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직은 초기여서 식재, 전시된 수목들이 왜소해 감흥이 덜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흐른 뒤 숲으로 무성해질 광경들을 그려보니 세종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자체 평가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현재도 그렇지만 수목원으로 인해 전국에서 세종시로 몰려들 인파를 생각하며 이날 견학 참가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청주시가 야심작으로 복원했다는 초정의 세종행궁을 입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옹색함에다 공간 개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졸작을 질타한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만들지나 말지~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요즘은 숲이 대세라고 한다. 중장년들에겐 국민프로그램이 된 종편의 <나는 자연인이다>도 숲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인류 문명사에 남긴 가장 확실한 교훈은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감의 깨우침이고 이의 영향 때문에도 ‘숲’의 가치는 더욱 커진 느낌이다. 아닌게 아니라 주말 산행을 즐기는 나로서도 코로나가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음을 실감한다. 거리두기의 생활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산행문화가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점잖아졌다.

무엇보다도 산행중에 왁자지껄 판을 벌이는 취식행위나 산악회 관광버스에서의 음주가무, 등산이 끝나면 통과의례처럼 으레 기승을 부리던 하산주문화가 어느덧 사라지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상 때가 되면 이런 현상들은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비관론도 있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가져온 미증유의 변화라는 점에서 손바닥 뒤집히듯 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감은 있다.

숲에 대한 인식이 전문화되면서 과거에는 그야말로 듣도 보지도 못하던 직업군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시대적 트렌드라면 그럴 수 있겠다. 10여년 전만 해도 생뚱맞게 들리던 숲 해설가는 이젠 고전 직종이 됐고 수목관리사, 산림치유사, 하이킹 에반젤리스트 등 숲 관련 전문직들이 색다른 주목을 받는다. 그동안 산림관리 하면 나무를 심고 자르고 하는 이미지가 고작이었는데 이젠 인간과의 관계에서 건강, 치유, 힐링, 귀의 등의 개념이 부각되며 숲은 더 이상 그저 상대성만의 자연이 아닌 우리 인간 삶의 동반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보리스트(arborist)로 불리는 수목관리사가 충북에 아주 현실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7월 괴산군이 아보리스트 양성교육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부터다. 마치 공중기예를 하듯 사람들이 줄에 의지해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는 장면이 이채로웠다. 수목관리를 하려면 작게는 낫과 톱에서 부터 크게는 크레인이나 사다리 등 중장비까지 필요하게 마련인데 문제는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람의 역할이 절실하고 이를 수행하는 전문가가 ‘나무 위를 걸어다닌다’는 아보리스트다. 산림지역이 많은 괴산군이 아보리스트에 눈을 일찌감치 뜬 것은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미동산수목원
미동산수목원

 

산림치유사(forest healer) 또한 근자에 두드러지고 있는 미래형 직업이다. 숲을 통한 심신의 안정과 힐링을 요체로 하는 산림치유는 더 이상 삶의 여유로 즐길 수 있는 사치성의 소재가 아니다.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상시적인, 이른바 지속가능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산림치유에 대해선 지난해 충청리뷰가 우리나라 산림치유학 1호 박사인 김윤희 씨 기고문을 1년간 게재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숲과 같이 하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한다는 등의 내용이 독자들에게 심적인 울림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는 강연 때마다 꼭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꿈과 미래가 있는 국민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

하이킹 에반젤리스트(hiking evangelist)는 요즘들어 특히 주목받는 분야다. 방송과 유튜브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단어 뜻 그대로 사람들이 등산이나 트레킹 등 숲 길을 걷는 데 있어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산길을 걷는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호흡하는, 스토리가 있는 걷기를 지도하는 것으로 현재 상큼한 이미지의 김섬주라는 에반젤리스트가 맹활약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국립 세종수목원을 둘러보면서 당연히 느낀 감정은 충북에도 하루빨리 이런 시설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현재 청주 미원면의 미동산수목원이 어느정도 갈증을 풀어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규모가 협소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북도가 확장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는데 초정 행궁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제대로된 기획과 행정을 폈으면 한다. 무슨 건축물부터 지을 것을 고민할 게 아니라 우선 공간과 광장의 개념부터 과감하게 도입해 설계했으면 한다.

 

끝내 아쉬운 것은 목하 각종 개발행위가 진행되고 있는 청주 밀레니엄타운을 왜 공원이나 수목원처럼 시민을 위한 대규모 휴식공간으로 조성할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만한 입지도 없었다는 자책이 든다.

전국의 지자체가 여전히 경쟁적으로 벌이는 무슨 무슨 걷기길 조성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 됐다. 되레 자연을 훼손하며 마구잡이로 데크를 설치하고 별 희한한 출렁다리를 만들며 시멘트를 처바르는 행위는 더 늦기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산림산업은 개발이 아닌 보존과 공존 그리고 이를 인간 삶에 순기능적으로 적용, 활용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타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림지역이 많은 충북이 미래 산업과 먹거리를 위해 천착할 것 또한 역시 ‘숲’이다.

세종수목원 출입구 바닥의 동판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a everything you need'(만약 당신이 정원과 서재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키케로 어록인 이 말이 요즘처럼 혼란한 시국에 특히 가슴에 와 닿는 까닭은 뭘까? 사람들이 인간(人間)과 인문(人文)을 너무 잃어가고 있다.

바로 많은 이들이 트럼프와 윤석열을 증오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