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뜨개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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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뜨개질의 만남
  • 충청리뷰
  • 승인 2020.11.1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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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가을이 깊어간다. 낮에는 기온이 조금 높아졌다가 아침과 저녁으로는 기온이 뚝 떨어지기도 하는 게 영락없는 가을 날씨다. 내가 어릴 때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우리를 유혹하기도 하고, 겨우살이 준비에 바쁘기도 해서인지 더욱 책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도서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모여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이 동아리는 계절에 상관없이 책을 읽어 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모여서 착실히 책을 읽다보니 벌써 시작한지 두 해가 되었다. 이 동아리가 꾸준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책을 읽고 와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미리 읽고 와서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모임에 와서 책을 읽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혼자 읽는다면 엄두를 못 낼 조금 지루하거나 어려운 내용의 책도 용기를 내어 함께 읽을 수 있다. 거기다가 한 사람이 일정 분량을 읽고 또 옆 사람이 이어서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니까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배려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삶의 자신감까지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장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읽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서 뜨개질을 한다.

행복한 삶, 따뜻한 공동체를 꿈꾸는 한 단체에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민들이 목도리를 떠서 전달하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 도서관 윤독 동아리가 동참하는 것이다. 재료를 단체에서 준비해주니 우리는 그저 마음을 내서 손을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용기를 내 신청을 했고 뜨개실이 도서관으로 도착했다. 드디어 독서와 뜨개질이 만나게 된 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손으로 뜨개질을 하면서 귀로는 책 읽는 소리를 듣는다. 그냥 책을 읽고 들을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무언가 긴장감도 있고 생동감도 느껴진다. 또한 이 목도리를 두르게 될 봉사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하는 등 아주 좋은 느낌들이 도서관을 휘감는다.

중국의 의성 손사막 선생은 대의정성(大醫精誠)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다. 가장 위대한 의료행위는 정성에 있다는 말이겠다. 코라나19 사태를 맞이하여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어려움을 이길 가장 큰 힘은 정성에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방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들을 향해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이 다들 정성으로 만난다면 거기서 진정한 방역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는 조금 독특한 경험을 하면서 독서하는 목적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독서의 목적일 수 있지만, 책을 읽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독서를 통해 깨우친 것들을 몸소 살아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독서도 하지만 산책도 하고, 뜨개질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만난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선생은 여자아이들에게 다른 무엇에 앞서 바느질 뜨개질 같은 걸 시키라고 하셨다. 학교공부에만 너무 매몰되어 가는 우리 교육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우리가 독서를 하면서도 뜨개질을 잊지 않고, 뜨개질을 하면서도 독서한 것을 되새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다음 주 독서 모임에서는 목도리들이 모두 완성될 것이다. 부디 이 목도리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수고하는 봉사자들에게 가서 마치 누이가 떠준 따스한 목도리처럼 그들의 삶을 감싸주기를 바란다.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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