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군수의 삐뚤어진 ‘표지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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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군수의 삐뚤어진 ‘표지석’ 사랑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11.26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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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기념식수 등 10년 재임기간에 약 60여개 남겨
전임 군수 때 준공한 공원에도, 범종에도 본인 이름 새겨

날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위해 애쓴 군수님이 있다. 정상혁 보은군수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보은군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참 기발했다. 보은군 주민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보은민들레희망연대는 정 군수가 집권하면서 약 60개의 표지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정확한 개수와 금액은 군에서도 파악 못할 정도다. 이름 남기기 집착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올해 7월 군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이른바 돌값 1000만원이 넘는 큰 규모의 표지석이 약 15개라는 자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보은민들레희망연대 측은 돌 값을 1000만원으로 기준했지만 2000만원짜리도 있다. 999만원짜리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눈으로 확인한 결과 최소 20개 이상의 대형 표지석에 군수의 이름이 새겨졌다. 기념식수와 간판, 비교적 작은 표지석까지 치면 60개를 족히 넘긴다. 관련 사진을 다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이품송 공원 범종에 새겨진 금빛 도장한 정 군수의 이름. 이는 언론보도를 타자 유일하게 군이 나서 삭제했다.
정이품송 공원 범종에 새겨진 금빛 도장한 정 군수의 이름. 이는 언론보도를 타자 유일하게 군이 나서 삭제했다.
전 군수가 이미 준공한 사업인데 7년 후 정 군수의 이름을 새겼다.
전 군수가 이미 준공한 사업인데 7년 후 정 군수의 이름을 새겼다.

 

20174월 이후 더 집착 보여

 

이들은 정 군수의 이름 남기기 집착이 더욱 심해진 것은 20174월 이후라고 한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정 군수의 표지석 남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 것. 그러자 정 군수는 본인 이름 외에 담당 부서장과 8~9급 공무원 이름까지 같이 새겨넣었다. 이른바 실명제를 이유로 들었다. 실명제가 된 후 정 군수 외에 단장, 팀장, 주무관까지 족히 5~6명의 이름이 돌에 기록되기 일쑤였다.

보은 말티재 관문에는 한 장소에 정 군수 이름을 새긴 총 4개의 표지석과 기념식수를 만날 수 있다. 2016년에 보은군 600년 기념으로 표지석을 설치(이때는 정 군수 이름만 들어감)했다. 이후 20174월 언론보도로 질타가 이어지자 군수는 같은 해 10월 관문 표지석을 더 크게 설치하고 담당공무원 이름까지 새겨버린다. 군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때 돌 값만 2000만원이 들어갔다.

그 뿐이 아니다. 자신의 업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도 이름을 남겼다. 2006년 준공한 솔향공원에 7년이 지난 2013년 군수의 이름을 가장 크게 쓴 기념비를 제작해 설치했다. 당시 솔향공원은 조연환 산림청장이 국비를 확보하고, 박종기 전 보은군수가 지방비를 확보해 조성한 것이었다. 준공은 이향래 보은군수가 했다. 이 같은 사례는 또 있었다.

보은읍에 있는 장산리 공원은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보은군민들에게 공원을 조성해 달라며 토지를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군수는 박맹호 회장의 유훈보다 입구 표지석에 본인의 이름을 더 크게 새겨 놓았다.

 

정 군수를 찬양하는 공덕비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세웠다.
정 군수를 찬양하는 공덕비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세웠다.
일명 매미교로 불리는 보은대교에 세워진 임금님 모자 모양의 표지석
일명 매미교로 불리는 보은대교에 세워진 임금님 모자 모양의 표지석

 

군수 공덕비까지 등장

 

이상한 조형물도 등장했다. 보은대교인 일명 매미교를 건설하면서 임금님 모자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고, 역시 정 군수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또 한글역사 왜곡논란이 일었던 훈민정음 공원(현재 정이품송 공원으로 명칭변경)에도 군수의 이름을 3군데에 새겨놓았다. 기념비, 역사해설비, 그리고 범종이었다. 그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범종이었다. 범종 안에 금빛으로 본인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다. 정 군수가 20199월 전국이장단워크숍에서 한 친일발언으로 전국 뉴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장하던 때였다. 범종의 금빛 이름도 같이 회자되면서 망신살이 뻗혔다. 군에선 바로 범종의 금빛 이름을 검은칠로 지워버렸다.

정 군수의 기이한 조형물 사랑에 일부 보은군민들이 화답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99월 속리산면 삼가1,2, 만수리, 도화리, 구병리 5개 마을 주민들이 약 450만원을 모아 정 군수 공덕비를 제작했다. 삼가~만수 구간 도로 확포장 공사가 정 군수의 공으로 성사됐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199월은 친일발언으로 정 군수가 전국구 인물이 된 때였고, 주민들이 주민소환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러자 주민들은 1년 동안 공덕비를 모처에 두었다가 올해 9월 설치했다. 보은민들레희망연대 측은 간혹 살아생전 공덕비를 제작한 경우는 있지만 모두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거나 지역사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군수가 도로포장을 해줬다고 군수의 일대기를 찬양하는 공덕비를 세우는 건 코미디다. 이를 단순히 마을 사람들의 과잉충성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정 군수는 뜬금없이 동학 혁명 119주년 기념식수를 하고 표지석을 세웠다. 120주년도 아니고 119주년에 말이다. 또 보은군청에 군수 취임 4주년, 5주년, 6주년, 7주년 등에 따른 기념식수와 함께 표지석을 줄곧 세우고 있다.

동학 119주년 기념비. 120주년을 1년 앞두고(?) 표지석을 세웠다.
동학 119주년 기념비. 120주년을 1년 앞두고(?) 표지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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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이름 새기기 지양해야

실명제는 책임 묻기 위한 제도

 

지자체장들은 공공건물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면 기념식수를 심고 표지석을 남긴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표지석엔 마치 당시 집권한 단체장이 한 듯한 뉘앙스가 남는다. 요즘엔 이러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 실명제를 하는 곳들이 많다. 실명제는 말 그대로 공사 과정에서 부실공사 등 탈이 많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다.

옥천군은 부실공사 및 책임소재를 따지기 위해 담당 과장과 주무관의 이름, 연락처를 적어놓고 있다. 표지석에 지자체장의 이름을 따로 새기지는 않는다. 도내 지자체장들은 표지석을 만들어도 00군수, 00시장, 00지사라고 새긴다. 당시 시장과 군수, 지사가 예산을 투입해 한 일이지, 개인이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지역인사는 표지석 자체를 되도록 세우지 말고, 세우게 된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보은군수처럼 맥락없이 개인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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