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과 프레임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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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과 프레임 망령
  • 한덕현
  • 승인 2020.12.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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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영역에 언제부터 프레임(frame)이란 단어가 등장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이 말은 지금까지 정치세력의 전략적 차원에서 주로 애용(?)되어 왔다는 게 개인적인 인지(認知)이고 때문에 프레임 하면 우선 언어의 유희(遊戱)가 먼저 떠오른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추미애-윤석열 관계가 또 새로운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이번에는 검찰과 법원, 검사와 판사라는 프레임이다. 판사사찰 논란 이후 언론이 이를 부추긴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요즘 흔히 회자되는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아닌 추미애-윤석열 관계라 표현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갈등으로 단정짓는 것 또한 둘 사이에 프레임을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아닌게 아니라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오른 후 같은 사안을 놓고도 지금까지 참 많은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거기엔 진보·보수와 정당을 대표로 하는 정치적 이해집단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특정 프레임을 설정한 후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를 명쾌하게 끌어들이려는 술수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처음 검찰개혁에서부터 검찰중립, 살아있는 권력 수사, 문재인식 독재, 윤석열식 조폭문화, 검찰 지상주의, 하극상, 윤석열 찍어내기, 헌정질서파괴, 검찰-법원 힘겨루기까지 상황마다 만들어지는 수사(修辭)가 넓게 보면 하나같이 프레임 싸움인 것이다.

정치에 있어 프레임 전략은 어쩔 수 없이 상대에 대한 어깃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자칫 반이성, 비합리적으로 흐르게 되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맹점은 사회적 화두의 의제가 흐트러져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추미애-윤석열 파동이 가장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 추미애와 윤석열, 검찰과 법원, 판사와 검사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국민여론이 요동치는 바람에 검찰개혁이라는 대의가 슬그머니 권력의 압제와 이에 맞서는 검찰의 항거라는 역학관계로 변질돼 급기야 대학가에서 박근혜 동정론까지 나온다니 할 말이 없다.

윤석열 문제는 민주와 반민주의 프레임을 들이댈만한 가치조차 없다. 조국 일가 수사와 국회 청문회등 그의 검찰총장 취임 이후 지금까지 과정을 통해 똑똑히 목격했듯이 국민들은 흔들리지 않는 그의 검찰주의를 경계하고 있고 이를 제도로써 구체화하자는 것이 검찰개혁인 것이다. 검찰은 무조건 옳고 검찰 수사는 곧 진리라는 이른바 검찰지상주의의 폐해는 지금처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 절대로 근절되지 않는다. 이를 견제해야 한다는 게 시대적 소명인데도 윤석열은 스스로가 예의 검찰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으며 독단의 검찰권을 행사해 왔다.

그래서 묻고 싶다. 윤석열이 검사직을 벗는다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요즘들어 절로 생긴다. 이제까지는 잘 조직된, 어느 공조직보다도 막강한 힘을 가진 검찰이란 조직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막상 조직을 떠나서는 어떤 사람으로 나타날 것인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은 기백을 잃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단순히 여론조사상의 대선 후보가 아니라 본격적인 현실의 대권 후보로 나서도 부족함이 없겠다.

 

어쨌든 검찰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까지 무색케하는, 수사권을 앞세운 만인지상의 조직이 된 현실에서 이제 뒤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너 한 번 맛좀 볼래하면 멀쩡한 사람들도 파멸로 내몰고, 조국일가에 대한 70여 회의 압수수색과 별건수사가 상징하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결코 문재인과 윤석열의 싸움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추미애와 윤석열의 치킨게임으로 성사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판사와 검사의 끗발 다툼으로 판도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이러한 프레임이야 말로 멀게는 좌익과 빨갱이에서부터 가깝게는 종북과 태극기부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나라를 그르치게 한 망국의 프레임과 다를 바 없다. 검찰개혁은 윤석열이 검찰에 남느냐 떠나느냐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그는 자신이 행동한 것만큼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을 것이고 그 평가에 따라 향후 운신도 달라질 것이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비유와 은유의 마술로 표현하며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머릿 속에는 늘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발표한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에 따르면 프레임이란 현대인들이 정치, 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한다.

특히 정치계에선 선거 전략상으로도 프레임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정치적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의도로 프레임은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했다.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 제시된 틀을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해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요즘의 우리나라 정국에 마치 맞춤형 이론으로 들린다.

일단 프레임이 형성되면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누가 종북좌파나 보수꼴통으로 평가되면 그 반대측 성향의 사람들은 상대의 모든 다양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그것만의 잣대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 프레임이 대중들의 사고틀을 이미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박해봤자 레이코프의 지적처럼 오히려 본질보다는 피상의 프레임만 더 강화하게 된다. 지금 추미애-윤석열의 다툼이 꼭 이런 꼴이다. 언론들이 앞다퉈 별 희한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린 채 무슨 민주와 반민주, 헌정유린과 헌정수호, 검찰파괴와 검찰중립, 독재와 반독재 구도로 정국이 변질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마지막 프레임은 아마도 답답한 문재인 대통령이 될 것같다. 아무리 신의도 좋고 인내도 좋지만 자기가 임명한 두 사람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이 때문에 정치가 쓸데없는 일에 매몰되면서 결과적으로 엄청난 국력손실을 야기하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해 왔으니 말이다. 리더는 사람을 잘 써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제대로 역할하도록 책임과 결단을 늘 가까이 하려는 의지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겠다는 결기가 없으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조차 피곤하다.

처음부터 이 지면을 통해 여론을 등에 업고 이미지를 구축한 인물들의 실제 효용성에 이의를 달며 조국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을 반대했던 나로서는 최근 일련의 일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백성들은 코로나로 인해 굶어 죽을 지경인데 그렇게들 할 일이 없나. 윤석열이 그토록 대단한 인물이라면 더 이상 조직과 후배들에게 기댈 게 아니라 이제 홀로서기를 하기 바란다. 바로 이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사람한테 충성하지 않는다는 용장(勇將)의 진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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