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쥐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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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쥐의 고난
  • 충청리뷰
  • 승인 2020.12.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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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현 농부 작가
최성현 농부 작가

 

1-이런저런 일로 시골 쥐는 아주 가끔 서울에 가는데, 그때마다 놀랍니다. 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서울에는 집도 많고, 사람도 많고 많습니다. 건물은 크고 높습니다. 얼마나 높은지 어느 높은 건물 맨 위를 올려다보려다 시골 쥐는 뒤로 넘어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서울엔 구경거리도 많고 많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고 많습니다. 가짓수도 많고, 요리 솜씨도 뛰어납니다.

게다가 서울 쥐는 모두 똑똑합니다. 그렇게 보이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1등했던 그 아이는 서울로 갔습니다. 중학교 때 1등했던 그 아이도 서울로 갔습니다. 고등학교 때 1등했던 그 아이도 서울로 갔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서울에는 1등했던 아이들이 모여 삽니다.

2-11월 11일은 시골 쥐에게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시골 쥐들이 모여 시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송전탑 결사 저지 홍천군민 2차 궐기 대회’ 날이었습니다. 홍천군청 앞마당에 수백 명이 모여 대회를 한 뒤 이어서 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현수막과 깃발도 들었습니다. 결사 반대, 물러가라, 저지한다와 같은 반대 구호도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강릉(강릉에코파워발전소)과 삼척(삼척포스파워발전소)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지 울진에는 신한울 핵발전소 1,2호기가 있습니다. 그 세 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보낼 송전선이자 탑입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500kV의 고압 직류송전선로라 합니다. 한전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송전탑 경과지는 경상북도의 울진군·봉화군, 강원도의 삼척시·영월군·정선군·평창군·횡성군·홍천군, 경기도의 양평군·가평군 등입니다.

반대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송전선로 경과 지역이 주민 동의 없이 몰래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송전선로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만드는 비상용 선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건강상의 우려, 경관 훼손, 재산 가치의 하락과 같은 송전선 주변 주민의 직접적인 피해와 손실입니다. 물론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셋째 이유가 가장 절실합니다.

3-제 동네 앞쪽에는 오래 전부터 고압 송전탑이 놓여 있습니다. 멀지 않습니다. 훤히 보입니다. 보기 흉합니다. 볼 때마다 저 산에 저 송전탑과 송전선이 없으면 얼마다 보기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새 송전탑은 마을 뒷산에 설치한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전의 이번 계획을 막지 못하면 머잖아 저는 앞뒤로 고압 송전선이 놓인 마을에 살게 됩니다.

반대 시위를 했던 11월 11일은 날씨가 좋았습니다. 가로수나 그 나무에 사는 작은 새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해와 같은 자연 에너지, 달리 말하면 천지 어버이 품 안의 온기만으로 사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하는 탄식과 함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대를 하기는 하지만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내 마을은 안 된다면 어느 마을은 되나? 어딘가 세워야 한다면, 그걸 피할 수 없다면 우리 마을로 지나가야 하지 않나? 그게 최선이 아닌가? 애쓰고 있는 집행부를 돕기 위해 누구보다 큰소리로 반대 구호를 외치면서도 저는 이런 생각으로 슬펐습니다.

송전선이 가는 곳은 어딜까요? 서울입니다. 수도권입니다. 서울 쥐들은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나누어지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는 길을 찾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대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자기 지역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곧 에너지 자급자족의 길입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세상이 시골 쥐는 답답하고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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