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요새라 부르고 싶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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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요새라 부르고 싶지 않은
  • 충청리뷰
  • 승인 2020.12.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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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애국정신의 표상, ‘어부의 요새’에서

 

아무리 보아도 이건 요새가 아니다. 자고로 요새라 함은 전쟁과 관련된 용어로 전략적인 방어시설이거나 천연적으로 그런 기능을 가진 곳을 이름인데, 이건 정말 아니다. 요새라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한마디로 그냥 동화의 나라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작은 창문이 열리면서 키 작은 빨간 머리 소녀가 고깔모자를 쓰고 나풀나풀 날아올 것만 같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다 지역에 있는 ‘어부의 요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요새는 로마네스크와 네오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19세기 말의 건축물로 고깔 모양을 한 7개의 탑(헝가리 땅에 처음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7개 부족을 상징)이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우아한 자태는 물론 거기서 내려다보는 다뉴브 강과 그 주변 경관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요새라고 부르는 것일까? ‘어부의 요새’라는 이름은 19세기 헝가리 전쟁 당시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들을 막기 위해 다뉴브 강가의 어부들이 이곳을 방어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어부의 요새’라 이름 짓고 대대로 헝가리 애국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어부의 요새 야경
어부의 요새 야경

 

애국이란 말을 들으면 자못 비장해지고 엄숙해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애국정신이 무너졌을 때 국가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면 국민이 무너지고……그리하여 한없이 비참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마다 국가 존망의 최우선 가치에 애국을 놓고 교육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어부의 요새 전경
어부의 요새 전경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애국이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통치의 수단으로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실이나 인물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숭고한 애국으로 치장하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 때일수록 훈장과 포장이 남발되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경계하고자 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곳에 와서 그런 생각이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건물과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아름다운 경관에 전쟁이니 애국이니 하는 의미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어부의 요새는 아름다웠다.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

 

훈장
-어부의 요새

넘치는 영광인가
도금된 포상인가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이 조그맣고 화려한 증표
당신을 위해 총칼을 든 것은
아니다
당신 조국을 위해 구축한 요새도
아니다
살고 싶었을 뿐이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늦도록 불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더러는 이웃 불러
갓 잡은 생선구일 안주로
노을 비낀 강 하구에
술 한 잔 띄우고 싶었을 뿐이다
우린 그저 작살과 그물만으로도
족할 줄 아는 가난한 어부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증표 하나로
당신과 당신 조국의
거창한 치장이 되는 건 너무 송구하다
문패라니,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이거, 여기 놓고 가겠다.

/장문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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