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와 박 감독, 그리고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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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와 박 감독, 그리고 차별금지법
  • 충청리뷰
  • 승인 2020.12.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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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조한상 청주대 법학과 교수

 

몇 달 전 물러난 여당의 대표는 유난히 자주 설화에 휩싸였다. “정치권에는 정신장애인이 많다”라는 말에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 차별과 혐오의 표현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 남성이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도 베트남 여성을 제일 선호하는 편입니다”라는 말에 여성 비하, 국격 훼손 망언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비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르겠다. 겉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서서는 “너무 예민한 거 아냐?” “불평이 너무 많잖아?”하고 비난의 방향으로 돌렸을지 모른다.

지난 2019년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의 박항서 감독이 태국의 세르비아 출신 코치로부터 인종차별적 언행을 받았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다. 당시를 녹화한 동영상에는 태국 코치가 자신의 손을 이용해 키가 작다는 제스처로 박 감독을 조롱하는 행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에 베트남축구협회는 태국 코치의 행동이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해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이를 제소했고, 해당 코치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올해 1월에 경질되었다.

이 기사를 보고 분노하지 않은 시민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인의 시각에서는 어떨까. 그저 키가 작다고 놀린 것에 불과한데, 인종차별 운운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가해자 코치는 미디어의 악의적 보도 때문이라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다. 특히 차별, 그리고 차별의 범주 안에서 다루어지는 혐오, 괴롭힘, 성희롱 같은 문제에서는 판단자가 어떤 처지에 서느냐에 따라 평가가 확연히 달라진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소수자의 입장에 서면 ‘참을 수 없는 일’이, 주류의 입장에 서면 ‘별것 아닌 일’로 변질한다. 소수자의 입장을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하지만 주류에 가까이 있는 시민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을 가하고 혐오를 쏟아 놓는다. 나쁜 사람이어서?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어서다.

법이야말로 기존의 주류를 대표하는 제도다. 기존에 만들어진 법을 조금 변화시키는 것조차 어려우며, 변화의 방향이 클수록 주류의 반발은 거세진다. 간신히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원리상 당연하지만, 역시 주류의 동의가 있어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류를 대표하는 법 제도가 차별 등의 사안을 교정하기는커녕 인식하기도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형사법적인 법익침해나 민사법적인 불법행위로 입증되어 구제받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어렵다.

차별금지에 관한 새로운 입법, 즉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제정이 시도되었으며, 결국 일곱 번 시도되어 일곱 번 모두 실패했다. 현재 여덟 번째 입법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7전 8기가 될지 그냥 8전이 되고 말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전히 주류 사회의 비판과 저항은 강력하며. 법 자체에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다행히도 지금 이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평등한 세상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무심코 하는 차별조차도 하지 않고 싶은 사람이 많다. 이들의 에너지로 더 늦지 않게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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