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아이들의 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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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아이들의 권리예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0.12.1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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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 도입한 보은 판동초의 의미 있는 실험
전교생에 매주 2000원 매점화폐 지급…선순환 가져와

[충청리뷰_박소영 기자] 충북 보은군 삼승면의 판동초등학교는 전교생이 41명인 작은 학교다. 이 작은 학교에 매점이 생긴 건 20199월이다. 매점이 생기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용돈이 없어서 매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드러난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저학년이라 집에서 따로 용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시골학교에서 매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워낙 주변에 편의점이나 가게가 없기 때문에 매점에서 아이들은 간단한 간식을 사먹기 시작했다.

보은 판동초 매점의 풍경. 아이들은 교내 매점 화폐로 물건을 산다.
보은 판동초 매점의 풍경. 아이들은 교내 매점 화폐로 물건을 산다.

그런데 오히려 매점이 생기자 아이들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다. 교사들의 고민이 커졌다. 때 마침 청주에 사는 한 독지가가 연락을 해왔다. 독지가는 미국에 사는 어머니(고 연일해 여사)가 돌아가셨는데 그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고 밝혀왔다. 올해 10월 독지가는 100만원을 판동초에 기부했다.

 

독지가가 준 100만원

 

100만원은 판동초에서 기본소득제를 실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됐다. 학교는 월요일 아침 매주 2000원씩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교내 매점 화폐로 지급한다. 이 화폐로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 있고 문구 등 학용품을 살 수도 있다. 학생수가 41명이라 한 주에 82000원만 있으면 된다.

판동초 강환욱 교사는 이 돈에 용돈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용돈은 왠지 주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할 것 같다. 때때로 조건도 붙는다. 아이들에게 이 돈은 기본소득이라고 알려준다. 좀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가치와 권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단 저학년의 경우 쉽게 알려주려고 용돈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어린이 기본소득이 시작된 지 6주 정도 지났다. 6주 밖에 되지 않았는데 판동초 사례는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판동초 사례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본소득이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있어 유용하다는 점, 기본소득이 모든 사람들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해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정책으로서도 매우 유용하다는 점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이미 확인됐다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자립과 경제에 대해 배워

 

학교 측은 기본소득을 받은 아이들이 저축을 할 경우 이자를 10% 지급하는 계획도 세웠다. 학생들은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소비·지출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정립할 수 있게 됐다. 그 자체가 경제교육인 셈이다.

강 교사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저축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10%이자가 가능하다며 웃었다.

판동초에선 매점을 통해 작은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판동초에서만 쓸 수 있는 화폐가 통용되고 이것이 선순환의 씨앗이 되고 있다. 강 교사는 매점에서 나오는 수익금과 마중물이 된 기부금이 쌓여서 기본소득도 실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환욱 교사(사진 왼쪽)는 기본소득제는 아이들의 ‘권리’라고 말한다.
강환욱 교사(사진 왼쪽)는 기본소득제는 아이들의 ‘권리’라고 말한다.

 

또 다른 독지가도 지원해

 

최근 보은 판동초의 사례를 보고 청주에 있는 독지가가 또 100만원을 기부했다. 강 교사는 일주일에 8만원, 한달이면 3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만약 독지가의 시드머니가 떨어지면 학교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학교 예산안에서 충분히 지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자립은 판동초에서 중요한 가치가 됐다. 자립을 위한 공간마련도 학교 측은 구상 중이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판동초 안에 목조주택을 짓고 있다. 목공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재봉틀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학교에서 시행했던 방과 후 수업은 보통 외부에서 강사가 왔다. 강 교사는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학부모들 가운데 재능 있는 분을 강사로 초청하기로 했다. 올해 여름방학 땐 학부모가 직접 요리교실을 아이들과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받기 전과 받은 후 아이들의 일상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강 교사는 기본소득은 우리학교 학생으로서 조건 없이 받는 거다. 받은 이후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안정감과 행복감이 커졌다. 어른들도 만약 한달에 40만원 씩 지원을 받는다고 하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는 촉진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매점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맘 편히 오고 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부터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고 한 일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른들도 기본소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동초에서 벌인 기본소득-지역화폐의 작은 실험이 다른 단위로도 번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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