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마을이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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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마을이 사람을 살린다
  • 충청리뷰
  • 승인 2020.12.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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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홍승표 길동무작은도서관장

 

기독교에서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맘 때가 되면 대림절을 지킨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성탄절 4주 전 주일부터 12월 24일까지의 시간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내야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을 축하하는 성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게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 기다림의 때에는 일요일 예배 때마다 초를 밝히고 자선을 베풀기도 하며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림이 꼭 기독교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취직을 기다리고, 어떤 이는 원치 않는 병과 싸우며 건강을 기다린다. 요즘 같이 코로나바이러스-19가 한 해 내내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는 얼른 바이러스가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러나 단순히 기다린다고 그것이 그냥 저절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기다림은 그 기다리는 대상이나 꿈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리라. 마치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다보면 그 대상이 오는 역이나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무얼 기다리고 마중 나가고 있을까.

올 한 해는 코로나와 함께 지내온 시간이라서 해마다 통과의례처럼 해왔던 일들을 건너뛰거나 아주 줄여서 간단하게 하면서 지내왔다. 그러다보니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다. 이맘 때가 되면 나는 길동무도서관을 후원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고, 붓글씨도 한 점 써서 보내 드렸다.

이번에는 무슨 글귀를 써야할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내가 선택하는 그 글귀가 요즘 내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과 맞닿아 있으리라. 아내와 상의하다 선택한 글귀는 ‘리인’(里仁)이다. 논어에 나오는 글귀이고 ‘어진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겪는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 그 문제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이웃들이 힘을 합하고 나아가 마을이 관심을 가질 때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감사편지에는 ‘리인’을 한자로 쓰고 그 아래에 한글로 ‘어진 마을이 사람을 살린다’고 쓰기로 마음먹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부분 마을을 잊고 산다. 한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서로를 알고 지내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에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던가.

꽤 오래전 일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 기자가 찾아와 대한민국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도올 선생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너와 나의 문제’라고 대답했단다. 기자가 ‘무슨 말인가?’ 라고 다시 물으니 언론(기자)과 교육(도올 선생)의 문제라고 했다는 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문제 상황은 달라졌을까.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어려움들을 서로 힘을 모아 극복해 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겪는 아픔까지 위로할 수 있는 어진 마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언론은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하고 교육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앞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리라.

아주 오랜 만에 순천에 사시는 나의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선생님이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내일은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문득 선생님이 쓰신 시가 하나 떠오른다. 그런 삶의 자세를 되새기면서 겸허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꾸며낸 이야기 않을 거다/ 뼈가 부딪쳐 내는 소리 아니면 소리 내지 않을 거다(중략)/ 내 뼈가 말하는 것을 말할 거다/ 내 뜨거운 피가 흐르는 대로 흐를 거다”(이현주,<이제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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