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가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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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그리운 시절
  • 충청리뷰
  • 승인 2020.12.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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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 올 초에는 정말 몰랐다. 성탄 연휴에 친구는 부대찌개 맛있게 끓여놓을 테니 딱 셋만 모여 한 잔하자고 제안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유혹을 물리치고 방구석에서 TV 리모콘만 만지고 있노라니 슬펐다. 이 판국에 이 정도 일로 슬프다하면 팔자 좋다는 소리나 들을까 부끄럽기도 했다.

사실 여럿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일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마냥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요즘은 특히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확인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런저런 부담을 줄이려고 각자 자신 있는 음식을 한 접시씩 들고 모인 적도 있다. 요리할 시간이 없으면 과일 등 후식을 사와도 환영을 받았고, 집주인은 밥과 국을 한 솥 끓여놓는, 말하자면 한국식 포틀럭파티였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유래했다는 포틀럭의 어원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냄비(pot)와 행운(luck)이 합쳐져서 ‘음식 운’이 있다거나 우리말로 ‘먹을 복’이 있다는 뜻이라는 설이다. 식사시간에 갑자기 닥친 손님을 내치지 않는다는 오래 이어온 배려도 있고, 20세기 초 경제공황기에 공동식사를 통해 이웃과 소박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넘긴 지혜도 담겨있다.

인류학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포틀럭의 어원을 포틀래치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포틀래치(potlatch)는 치누크족의 언어 가운데 ‘소비한다’, ‘식사를 제공한다’는 단어에서 나왔다. 아메리카 북서부 원주민 사회에서 실행되었던 출생,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 등의 통과의례나 지도자의 취임식에 하는 ‘선물을 주는 잔치’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됐다.

이 말이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경제학자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1925)에서 ‘선물경제’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였다. 그 후 자본주의의 등가교환과 화폐경제에 실망을 느낀 사람들은 시장경제 바깥에 존재하는 선물과 증여의 순기능과 분배 효과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원주민 사회도 세상과 함께 변화와 부침을 거듭했으니 이제는 포틀래치 풍속도 달라졌고, 마주 앉아 먹는 것이 감염의 위험을 초래하는 시대에 포틀럭의 미덕을 칭송하기만도 어려워졌다. 어찌 보면 해가 바뀌어도 자발적 자가격리, 비대면을 권장하는 상황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밥상에 둘러앉던 시절을 내 맘대로 그저 아름답게 회상할 뿐이다. 아마 회식과 단체 식사가 일상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분명 도로 ‘혼밥’ 옹호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친구와의 밥자리를 아쉬워하고 있을 때 급식소가 문을 닫아 하루에 유일한 한 끼를 굶는 분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서 단체 근무를 해야 하는 분도 있다. 교육복지사는 학교에 오지 못해서 잘 먹고, 잘 지내는지 확인이 안 되는 어린 학생을 걱정하며 가정방문할 방도를 고심한다.

취업도 위축되었다. 늦둥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던 후배는 초등학교 휴교가 장기화되자 쓸 수 있는 모든 휴가를 다 쓰고 난 후 사직서를 썼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쉬는 2030 청년이 지난 달 통계청 발표로 20만 명으로 작년보다 40%가 늘어났다. ‘쉬었음’은 비자발적인 이유로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 1년 사이에 구직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을 집계한 것이다.

일자리를 구해도 안전하지 않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제정을 요구하며 김용균의 어머니는 단식을 하고 계시다. 요즘은 작은 위로도 소중하다. 사진작가 송철의는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라는 제목으로 예전에 찍은 아이슬랜드의 오로라, 눈 덮힌 설경 등을 이따금 SNS에 올린다.

그 마음이 고맙다. 나는 가끔 상상을 해본다. 함께 나눠 먹을 음식, 들려주고 싶은 음악 뭐든 하나씩 들고 나와서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서로 인사하고, 당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고 감사하고, 둘러앉아 어울리는 그런 거대한 포틀럭파티가 열리는 날을.

/이남희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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