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탑평리 출토 6엽 연화문 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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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탑평리 출토 6엽 연화문 수막새
  • 충청리뷰
  • 승인 2020.12.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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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문화 융합된 중원문화권의 대표적 유물

 

충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충주 탑평리출토 6엽 연화문 수막새의 크기는 직경 17.6cm, 두께 1.9cm 정도이다. 이 와당(瓦當)은 연자(蓮子) 7개가 새겨진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6엽의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요철이 뚜렷하다. 연잎 사이에는 간엽(間葉)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으며 주연(周緣)을 둘렀는데 아무런 장식이 없다.

중앙탑
중앙탑

 

이 와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에서만 출토되는 독특한 막새기와인데, 중원문화권의 성격을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통 중원문화는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문화이며, 삼국문화가 융·복합된 문화라고 한다. 시원문화라고 하는 것은 한강이나 금강 주변에서 확인되는 선사시대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단양의 금굴이나 상시, 수양개 선사유적 등에서 한반도에서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을 찾았고, 청주 소로리, 충주 조동리, 옥천 대천리 등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의 흔적을 찾아 한문화의 기원을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문화가 융·복합 되었다는 것은 중원지역의 산성이나 건물지, 무덤 등 여러 유적을 발굴하며 백제, 고구려, 신라의 흔적이 함께 느껴진다는 점이다. 백제가 축조한 장미산성에서 고구려의 축성기법이 확인되고, 신라가 조성하였을 봉황리 마애불상군에서는 고구려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다. 탑평리에서 출토되는 와당에서는 백제와 고구려, 신라 세나라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있다.

중원문화, 1980년대 초반에 처음 등장
중원문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지방문화를 활성화하자는 논리로 서울을 제외한 전 지역을 문화권으로 묶었는데, 신라문화권, 백제문화권, 가야문화권을 설정하니 충청북도와 강원도, 제주도가 남았다. 이에 제주와 목포 등은 도서문화권, 충북과 주변 일부는 한반도의 가운데이니 중원문화권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처음에는 근본도 실체도 없는 문화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원지역은 신라와 백제, 고구려 문화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하며, 주변부에 무슨 문화권이냐는 비난의 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충주고구려비(국보 205호)와 단양신라적성비(국보 197호)가 발견되고 충주댐수몰지역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며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순 주변부가 아니라 나름 창조적 문화를 갖추고 있음이 하나둘씩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제 3세계권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문화적 특성이 있고, 이것이 새로운 변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당위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중원문화의 특성을 탑평리에서 출토된 와당 하나에서 읽어낸 이는 예성문화연구회 초대회장이며 검사인 유창종이었다. 그는 충주 탑평리에서 출토된 6엽 연화문 수막새를 보고 “회백색의 바탕흙은 백제의 와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연꽃잎이 6개인 것은 신라에서 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여기에 연꽃잎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만든 것처럼 힘 있게 느껴지는 것은 고구려적 문화양상이다”라고 하였다. 중원의 폐사지에서 발견한 한 조각의 와당에서 삼국문화를 읽은 것이다.

이런 혜안이 있었기에 검사 유창종은 평생을 와당의 매력에 빠져 와당을 수집하고 와당을 연구하는 이가 된다. 평생 모은 한·중·일 와당 1,87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본인의 이름을 붙인 전시실을 열었고, 한국기와학회를 창립하기까지 하였다. 퇴직 후에는 일본 이우찌(井內)가 수집한 한국와당 1,301점을 환수하여 사립 유금와당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하였다.

와당이라는 것은 우리 한옥의 지붕을 장식하던 것이다. 지붕에 기와를 그냥 얹은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기호, 무늬를 넣은 기와로 처마를 꾸몄다. 이런 기와를 한자로 와당(瓦當), 우리말로 막새기와, 줄여서 막새라고 부르는데 처마 끝을 마감하는 건축자재이기도 하다. 주로 기와는 관청건물이나 귀족, 양반 같은 비교적 부자들의 기와집에서 사용되었기에 기와는 권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담긴 탑평리 막새
그렇지만 와당은 수억을 호가하는 귀한 유물이 아니다. 옛 관아 터나 폐사지 등을 조사하다 보면 흔히 발에 차이던 것이었다. 이러한 건축재에 나름의 혼을 담아 지역의 성격을 담았고, 역사를 풀어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백제 8엽연화문수막새
백제 8엽연화문수막새
신라6엽문수막새
신라6엽문수막새
통일신라연화문 수막새
통일신라 연화문 수막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처럼 장대하거나, 백제의 금동용봉향로처럼 화려하지도, 경주의 금관처럼 고급스럽지는 않더라도 막새들은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 지역의 색깔을 담아 자기 고장의 특색을 이야기한다. 부여의 막새와 경주의 막새가 서로 비슷하지만 내가 더 멋지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듯하다.

이에 비해 탑평리의 막새는 들에 피어난 풀꽃처럼, 민초들의 아우성처럼 세 나라의 문화를 모두 융합한 크고 넓고 풍성한 마음 밭을 가지고 있음을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백제의 화려함과 신라의 찬란한 만이 아니라 고구려의 용맹하고 강인함도 담았다고….

탑평리 막새기와를 만들던 장인들처럼 각각의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며 융·복합을 꿈꾸며 연구하는 모임들이 아직은 살아있다. 현재까지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마저 무관심과 홀대로 스러진다면 이는 6엽 연화문 수막새가 빛을 잃는 것과 같은 느낌일 듯하다.

/ 길경택 사단법인 예성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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