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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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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인가
  • 충청리뷰
  • 승인 2021.01.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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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선과 방식으로 현실에 구축한 유토피아라는 의미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저서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에 기원한다. 유토피아 섬에는 지배자도 없고 피지배자도 없고,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다. 게으르지 않기 위해 하루 6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 같은 집에서, 같은 옷을 입고, 공동 식사를 하는 이 섬은 모든 자산을 공유하는 극단적 평등 사회다.

토머스 모어가 이 책을 쓰던 1516년은 군주와 귀족의 부패가 만연했다. 모어는 현실과 정반대의 생산과 소유의 평등이 실현되는 유토피아 섬을 소설의 형식으로 제안했다, 16세기의 부조리는 현재에도 여전하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개념으로만 존재한다.

헤테로토피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흉측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뜻밖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만한 세상’을 느끼기도 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 구분될 수 없는 이 ‘살만한 세상’의 공간을 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부르기로 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다른, 낯선, 혼종된’이란 의미의 헤테로(heteros)와 ‘장소’라는 뜻의 토포스(topos)가 합쳐진 단어로, 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이란 뜻이다. 어린 시절의 인디언 텐트처럼 숨을 수 있는 곳. 일탈의 장소.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곳. 찾아내거나,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 헤테로토피아를 자신의 시선과 방식으로 현실에 구축한 유토피아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 저항과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헤테로토피아라는 단어를 마주칠 때마다 더 나아진 세상에 다가서는 기분이다. 이것이 ‘헤테로토피아’라고 이름붙인 이유이다.

헤테로토피아化
처음부터 헤테로토피아를 지향하는 공간도 있지만, 어쩌다 누군가에게 헤테로토피아가 되는 공간도 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꺼내보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시작한다. 공항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또는 돌아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환승 공간이다. 영화는 이제 막 입국장에 도착한 사람들과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포옹하는 장면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리고 휴 그랜트의 독백이 음악처럼 흐른다.

“세상사에 우울해 질 때면, 난 히드로 공항의 입국장을 생각한다. 증오와 탐욕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특별하지도 않고 뉴스거리가 될 만큼 대단하지도 않아도 부자 간, 모녀 간, 부부 간, 연인 간, 오랜 친구 사이에도 사랑은 언제나 존재한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을 때, 내가 알기에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어떤 증오나 복수의 메시지는 없었다. 모두 사랑의 메시지였다. 둘러보면 사랑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한 장면,
영화 ‘러브 액츄얼리’ 한 장면.

 

영화는 공항을 환승이 아닌 만남과 사랑의 공간이라는 다른 시선을 부여한다. 누군가는 여행이 그리워 질 때면 공항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다고 썼다. 나는 몇 번의 여행을 거치며, 비행기에 오르기 전 출국장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의식처럼 갖는다. 개인적 경험과 영화의 이미지와 책의 문장들이 중첩된 공항은 서서히 의미를 가진다. 이제 공항은 나에게 여행의 목적지 중의 한 곳이며, 헤테로토피아의 일부다. 의미 없는 장소도 누군가의 경험과 애정이 쌓이면서 헤테로토피아化 된다.

헤테로토피아 도시
헤테로토피아의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타인에게도 의미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을 공유하듯, 의미 있는 장소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때 타인들의 관심도 증폭되고, 그만큼 헤테로토피아의 가능성은 커진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이 도시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당신만 아는 장소가 있나요? 그 곳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언제 그 곳에 가나요? 내게도 보여줄 수 있나요? 그리고 서로의 헤테로토피아를 공유하는 상상을 한다. 콜라주 그림처럼 모두의 헤테로토피아를 모아서 붙이고 잇고 연결하면 도시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커다란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해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헤테로토피아를 묻고 찾아가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연결의 단서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 이정민 청주시 도시계획상임기획단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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