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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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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국?
  • 한덕현
  • 승인 2021.01.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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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인의 충격이었다. 폭도들에 의해 의사당 집기가 마구 부서지고 바이든 당선을 최종 인준하기 위해 모여있던 상·하원 의원들이 단상 뒤 구석에 숨에 마치 놀란 토끼처럼 눈을 굴리는 모습은 세계 최강국이니,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니 하는 미국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 언론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는 끝났다고 일침을 가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독특한 행동만큼이나 국제사회의 예측과 판단은 거칠면서도 다양했다. 그의 말대로 위대한 미국을 향한 기대감을 표출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뼛속까지 부동산 투기꾼인 그의 성격과 체질을 문제삼아 앞으로 미국이 요동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때 트럼프의 앞날을 놓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월가의 전설적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전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오랫동안 국무장관을 지낸 키신저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이런 말을 했다. “트럼프는 경이로운 인물이며 미국을 위해, 그리고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대단한 기회를 만들 것이다.” 세계 경찰국가 미국을 등에 업고 국제무대를 누비면서도 번번이 상대 강대국들의 어깃장에 시달리던 키신저가 자신이 못다 펼친 꿈과 역할을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트럼프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으로나마 상쇄하려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반면 평생 돈을 좇으며 현실적인 실물경제를 몸에 지고 살았던 소로스는 정반대로 트럼프를 깎아 내렸다. “트럼프는 사기꾼이자 잠재적 독재자다. 자기모순이 가득한 인물이며 실패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결과는 소로소의 완승이 됐다. 트럼프는 선거 불복으로 끝까지 여론을 호도하는 사기꾼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끊임없이 자기모순에 가득찬 객기를 부리다가 마침내 민주주의 상징인 의사당 난입을 부채질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씩이나 탄핵몰이에 휩싸이게 됐다. 오죽했으면 오늘의 공화당을 있게 한 부시 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대한 논쟁이 민주 공화국이 아닌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바나나 공화국은 바나나와 같은 원시적 1차 산품에 휘둘리면서 부정과 무질서가 판치는 후진국을 경멸하는 말이다.

사실 트럼프는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단아의 본색을 드러냈다. 정책은 즉흥적이었고 내각과 참모보다는 트위터가 국정운영의 최고 파트너 됐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졸지에 적이 됐고 비판 언론은 가짜로 매도됐다. 장관이나 참모라고 해봤자 문자 하나로 해고당하기 일쑤였고 국제관계에서도 장사꾼 전술이 판을 쳤다. 동맹관계는 무시되고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나라만 눈에 들어 왔다. 자기 기분에 따라 상대국을 들어다 놨다 하는 모습은 격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지만 240년 민주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교과서로 배운 정의와 페어플레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제도와 큰 틀에서 승자는 포용하고 패자는 순응하며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왔다. 멜팅 포트(melting pot, 용광로)로 상징되는 다국적, 다인종의 나라에서 약속된 규범과 이에 대한 따름은 조직과 체제 유지의 필수조건이 된다. 이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인데도 트럼프는 이를 어겼고 그 것도 부족해 자신의 지지자인 대중들을 선동했다.

예상대로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각종 채증에 의한 폭도들의 체포와 기소가 속속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 취임에 맞춰 제2의 폭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에는 맨손이 아닌 무장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의회 난입 때도 일부는 총을 소지하고 트럼프에게 미운오리 였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살해의도를 SNS에 드러냈다고 해서 지금 미국이 난리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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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우리나라에도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폭동을 주도한 세력들이 극우 기독교 신봉자임이 드러나면서 당장 국내의 태극기부대가 오버랩되는 것이다. 240년 전통의 미국 민주주의도 한 사람의 그릇된 지도자에 의해 저렇게 망가지는데 진영으로 딱 갈린 국민정서에 편승해 기상천외한 종교리더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당 폭동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면 그래도 미국은 미국임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동자를 발본색원하고 트럼프에 대해선 탄핵의 카드를 들이대며 배후 선동에 대한 조사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선출된 권력에 대한 도전을 놓고 다시 국민적 공분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트럼프를 단단히 지켜주던 공화당의 분열도 커지고 있다. 당장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주목된다. 별명이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로 불리는 그는 그동안 공화당과 트럼프에겐 냉혈, 무자비한 호위무사였지만 등을 돌린 것이다.

그는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를 즉각 ‘폭력배'와 ‘폭도'로 규정하며 헌법상 책무를 다해 결국 민주당을 도와 대선 당선자 인증을 마무리했다. 당리당략 보다는 위기의 순간에 정의와 상식을 선택한 그의 단호함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트럼프가 온갖 비상식과 통치적 만행에도 불구, 대통령으로서 역할할 수 있었던 것은 선출된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선출된 권력의 최고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유린당하자 여론이 급격히 달라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이 ‘트럼피즘’으로 통칭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아마도 하루를 못 버티고 탄핵당할 것이다. 미국은 어쨌든 제도와 시스템으로 생성되는 권위에 대한 존중이 확고하고 이에 근거하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막강하다는 공권력의 위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대통령의 권력과 권한조차 정쟁의 같잖은 시비거리가 되고 실정법의 노리개가 된 느낌이다. 국가 통치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젠 상식이 아닌 법의 잣대로만 재단되는 형국이 됐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출된 권력에 대한 존중은커녕 냉소와 증오만 넘쳐난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다수 민중의 지배와 통제로 이루어지는 정치형태이고 이 것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대의제도란 것을 만들어 선출의 권력을 부여한다. 또한 이를 올바르게 유도하기 위해 제도와 규범을 두어 늘 상대성의 이해충돌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는 약속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이를 지킬 때만이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해진다.

한데 눈만 뜨면 상대를 저주하고 의무와 책임은 방기한 채 오로지 표현의 자유만을 부르짖으며 거리를 활개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미국의 이번 의회폭동, 아니 국가반란(insurrection)은 이래저래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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