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시대의 소멸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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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시대의 소멸산업
  • 충청리뷰
  • 승인 2021.01.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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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해가는 지방 상조회사·장례식장·요양병원 천지, 그 다음은?

 

한 지역방송 시사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무심코 방송 시작 전 광고를 보니, 7개 중에 4개가 상조회사나 장례식장 관련 광고였다. 왕년의 유명 탤런트는 부모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따뜻이 보내드리겠다고 속삭이고 왕년의 인기 가수는 ‘어머님은 나의 영원한 VIP’라며 가시는 길을 VIP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김서방 고맙네, 이서방 고맙네, 박서방도 고맙네’라며, 서방사거리의 이 장례식장은 고인이 감탄할 지경이라며 서비스를 자랑했다.

그러고 보니 지역에 가면 예전에 결혼식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 요즘은 장례식장이 있다. 광주송정역 가는 길에 있는 빌딩 장례식장은 전에 결혼식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쇠락해 가는 지방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물이 바로 장례식장이다. 학교와 유치원이 사라지고 결혼식장도 사라지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어 애도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장례식장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일전에 지방도를 지나다 ‘장례식 특별 할인 기간’이라는 선전 문구를 본 적이 있다. 특별 할인을 위해 죽을 날도 가려야 한다는 것인지, 기분이 묘했다. 점점이 흩어진 자식들이 그나마 모이는 날이 바로 장례식일 것이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효도를 화려한 장례식장으로 감싸려는 것인지 장례식과 상조 회사는 점점 더 거해지고 있다.

 

언론에 ‘소멸 위험 지자체 순위’가 공개되면서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이라는 소멸산업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럼 그 다음은? 답이 안 떠오른다. 지방자치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까지 털어먹고 난 다음에 지방은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지, 제사산업이 그 자리를 대체할지...

어쩌면 이 소멸산업은 좀 더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지방에 장례식장만큼 빈번한 곳이 요양병원이다. 힘들게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도 효도의 한 방식이라며, 이들은 효도의 프레임을 바꾸며 도시의 자식들을 유혹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말년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요양병원에서 말년을 보내고, 지방 장례식장에서 의식을 치른 뒤에, 현지의 납골당에 안치되는, ‘화려한 고려장’이 바로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

아이러니다. ‘혐오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밖으로 밀어낸 시설에서, 우리가 말년을 보낸다는 것이. 선호와 혐오를 구분한 것은 우리인데, 우리가 스스로 혐오의 고객이 되는 상황은 단두대를 개발한 왕이 단두대에 처형된 것만큼 아이러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 소멸을 막고 지역을 가꾸는 것은 우리의 노후를 대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소멸해가는 지방에서 같이 소멸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인적은 끊기고 쓸데없는 건물만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지금 지방의 모습은 사람이 살았던 자리에 건물이 살 수 있도록, 헛돈을 쏟아 붓고 있다. 이런 식이다. 노인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게이트볼장을 만든다(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만들자고 한다(그럼 해를 가리게 되는데?). 그 다음에는 어두우니 전기 시설을 하고 시원한 바람이 아쉬우니 선풍기를 달자고 한다.

마을 정자는 어떤가? 처음에는 마을 정자를 예전 것보다 멋진 팔각정으로 짓자고 한다(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샷시와 유리창을 달자고 한다(그럼 바람을 가리게 되어 더울텐데?). 그런 다음 선풍기를 틀고 냉장고를 둘 수 있도록 전기를 연결하자고 한다. 요즘 농촌에 가면 집도 아니고 정자도 아닌 괴상한 건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의 효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참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에 공원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거야말로 상상력의 극단이다. 비유하자면 잔칫집에 도시락 싸가는 격이다. 사방이 자연인데, 그 자연의 한복판에 자연의 일부를 복원한 공원을 조성한다. 여기에 녹슬고 있는 운동시설이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그 녹슨 운동기구를 담쟁이등 식물들이 뱀이 똬리를 틀 듯 휘감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황당하지만 현실이다. 이런 지붕 있는 게이트볼장과 통창이 설치된 정자는 약과다. 도농복합센터와 웰빙센터처럼 수십억을 들인 삽질도 곳곳에 즐비하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웰빙이 무엇인지, 단 1도 고민하지 않고 만든 시설이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그런 곳을 이용할 때는 화장실이 급할 때다. 말하자면 그곳은 쓸데없이 많은 부속시설이 달린 거대한 화장실인 셈이다.

지방소멸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가볍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소 10년의 호흡은 두고 들여다보아야 할 문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지어놓고 보면 후손들에게 큰 짐이 될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인지 젊어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도시의 자식들이 낸 세금이 ‘가짜 효도’에 동원되어 휘발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풍경을 언제까지 봐야할지….

/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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