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심고을연구원, ‘팔봉서원’ 살리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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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심고을연구원, ‘팔봉서원’ 살리기 주목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1.01.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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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이연경·김세필·노수신 배향…답사·책자발간·문화공연 등 진행
충주 팔봉서원 설경.
팔봉서원에서 열린 성인식 기념 사진.
중심고을연구원 이상기 원장.

[충청리뷰_김천수 기자] 수주팔봉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팔봉서원(八峰書院)’을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와 대소원면 문수리 팔봉마을 일원을 수주팔봉으로 부른다. 가볼 곳이 많은 편인 충주에선 명소라 할 것은 아니어도 여름철 캠핑객들이 찾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팔봉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수주팔봉 절경을 마주하고 있지만 팔봉서원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런데 이곳이 문화유적 관광지로 서서히 관심을 끌고 있다. 4년전부터 ‘중심고을연구원’이라는 충주 지역의 자생 문화단체가 2018년에 ‘죽은 팔봉서원 살려내기’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2019년에는 ‘살았다 팔봉서원, 그 다음은?’ 사업을 벌였고, 2020년에는 3년차 사업으로 ‘팔봉서원과 기묘명현(己卯名賢) 알리기’를 진행했다.

문학박사 이상기씨를 중심으로 2017년 발족한 중심고을연구원은 첫해에 <이야기로 만나는 월악산 국립공원 문화자원>을 집필했다. 문화재청과 충주시 지원을 받기 시작한 2018년에는 <팔봉서원>, <팔봉서원지>를 발간했다. 이어 이듬해에는 <달래강 인문학 기행(충북학연구소 2019)>를 집필하고, <팔봉서원지 2019>를 펴내면서 충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다.

2020년에는 <배향인물 시문공부>를 발간하고 367쪽의 <팔봉서원지 2020>과 104쪽의 <팔봉서원 문화재활용사업 사진자료집Ⅰ> 책자를 펴냈다. 팔봉서원지에는 매년 100여명의 중심고을연구원 회원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팔봉서원지 2020>을 살펴보면 자료집을 넘어 일기와도 같은 답사기와 행사마다 시나리오까지 담겨 민간단체의 문화사업 일구기의 표본을 삼아도 좋을 만하다. 3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사업과 관련 자료를 온전히 기록한 역사 사료집이라 할만하다.

수주팔봉 절경과 어울림

지난해 회원들은 옛길 걷기 행사로 ‘팔봉서원 찾아가기’를 먼저 시작했다. 충주에서 팔봉서원까지 달천을 따라 걸으며 ‘팔봉서원 문화재활용사업’ 시종(始終)의 의미를 새기는 행사다. 연구원이 이 행사에 부여한 4가지 의미는 이렇다. 첫째, 팔봉서원을 찾아 배향인물에게 ‘팔봉서원 문화재활용사업’ 알리기. 둘째, 현장에서 팔봉서원의 역사와 배향인물 배우기. 셋째, 달천을 따라 산수와 역사,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이야기 나누기. 넷째, 옛길을 걸어 팔봉서원에서 충주로 돌아오기. 주요 답사 지점은 충렬사, 단월역(상수도사업소), 유주막, 정심사(삼초대), 대림산성(봉수), 마장터(향산초교), 골산포 강변도로, 싯계교, 칼바위, 팔봉서원이다. 행사는 3시간에 걸쳐 9㎞를 걸으며 이어졌다.

지난해 회원들은 또 ‘배향인물 역사 찾기’로 △탄수 이연경 자취 찾기 △음애 이자 자취 찾기 △십청헌 김세필 자취 찾기 △소재 노수신 유배지 찾기 △김세필 유배지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충주와 충북의 서원 답사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원 답사도 실시했다. 소수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필암서원, 남계서원, 도동서원, 옥산서원, 돈암서원을 각각 방문 답사했다.

달천과 함께하는 체험으로 달천 문화생태탐방로 조사 및 카누 타기를 실시했다. 특히 ‘달천의 이쪽과 저쪽에 사는 사람들’ 프로그램에선 그들의 진솔하고 소박한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세세히 소개해 생활사 가치가 될만하다.

책자에는 현장 답사 및 체험 외에도 배향인물 공부하기로 △행장과 연표를 통해 본 배향인물 일대기 △이자, 노수신의 시문 공부하기 △팔봉서원 사액제문 전문이 해석과 함께 실렸다.

이 밖에 제례와 관례로 ‘팔봉서원 춘계제향과 관례(성인식)’ 및 ‘기영회’도 실시했다. 기영회는 조선시대 일흔 살 이상 된 고급 관료나 공신들을 초청해 베풀었던 연회다. 대신 연구원에선 지역의 덕망 있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연회를 베풀었다. 팔봉서원에 배향된 노수신 선생은 실제 기영회에 참석해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연구원은 또 음악 미술과 함께 하는 팔봉서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팔봉서원 노래 부르기, 노수신의 시를 민요에 맞춰 부르기, 그림으로 팔봉서원 가까워지기도 열었다.

여름과 가을 예술공연도 각각 열고 종손과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도 진행했다. 특히 팔봉서원 사당에 ‘숭덕묘’ 편액 걸기 행사는 역사 기록이 됐다. ‘숭덕묘’는 노수신이 쓴 ‘계탄서원기’에서 따와 액호로 정해졌다. 글씨는 서예가 도암 박수훈 선생이, 서각은 이석호 선생이 맡았다. 숭덕묘 현판 게액 의식은 2020년 12월 18일, 헌다와 독축으로 진행됐다.

이런 행사들에 대한 내용은 일거수일투족 세밀하게 책자에 담겨 있다. 특별히 사진자료집에는 지난 3년 동안 추진된 ‘팔봉서원 문화재활용사업’의 순간 중 중요한 사진과 설명이 담겨있다.

문화관광 자원화 목표

이상기 중심고을연구원 원장은 “2021년에도 ‘살아 움직이는 팔봉서원’ 주제로 사업이 계속된다”며 “팔봉서원과 달천을 관광자원화하고 팔봉서원의 활용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3월부터 11월까지 추진될 4가지 세부사업으로 △팔봉서원과 달천 문화관광자원 만들기 △배향인물 공부하고 알리기 △팔봉서원 예술로 표현하고 즐기기 △팔봉서원 알리기와 교류하기를 밝혔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충주 팔봉서원은 조선시대 명현인 이자·이연경·김세필·노수신 등 4현을 모신 서원으로 후생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다. 팔봉서원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건립돼 현종 13년(1672)에 나라에서 ‘팔봉서원(八峰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으로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다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8년 전통양식으로 복원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출입문은 솟을 삼문(三門)형태로 ‘팔봉서원’의 현판이 걸려 있고 사당의 오른쪽으로는 재실이 있으며 왼쪽에는 ‘복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문화재청은 팔봉서원에 대해 사액서원으로서 지방 유교교육을 담당했던 곳으로 설명했다. 위패를 봉안한 인물은 사화(士禍)와 관련돼 지조와 절개를 지킨 성현들로 고매한 정신과 서원의 전통을 널리 알려 자긍심 고취와 선조들의 얼을 기리는 터전으로 삼아야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팔봉서원은 처음 계탄서원(溪灘書院)으로 건립됐다. 이자 선생은 기묘사화로 인해 1529년 팔봉마을 건너 토계리로 귀양을 왔다가 1533년 세상을 떠났다. 이에 50년 후인 1583년 충주의 유림들은 팔봉에 계탄서원을 건립했다. 계는 이자의 호인 계옹(溪翁), 탄은 이연경의 호인 탄수(灘叟)의 첫 글자에서 따 온 것이다. 이후 사액을 받으면서 팔봉서원이 된 것이다.

중심고을연구원이 발간한 충주 '팔봉서원 2020' 책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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