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러시아마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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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러시아마을을 아시나요
  • 한덕현
  • 승인 2021.0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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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무슨 개발사업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은 사업주체와 현지 주민 간의 마찰이다. 공적 사업이든 아니면 사기업의 수익창출을 위한 개발이든 이는 피할 수가 없다. 대부분은 원주민 이주 및 토지보상과 관련된 것들이다. 현재도 청주테크노폴리스 3차 사업등 도내 곳곳의 대규모 개발행위가 현지 주민과의 마찰로 각종 뉴스에 오르고 있다. 사업을 시행하는 입장에선 주민반발로 상징되는 예측불허의 ‘변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사업성공의 최대 관건이 되고 실제로 이에 발목이 잡혀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빚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양측이 처음부터 원만한 합의를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다가 마지못해 타협을 하거나 이조차 안되면 소송으로까지 번지며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불문가지다. 상대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협잡과 기망이 횡행하고 심하면 폭력사태로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불행한 일은 오랜 세월 한 동네에 이웃해 살며 정을 나눈 주민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틀어지면서 반목하거나 아예 원수지간으로 변질되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꼭 그런 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수는 없을까 하는 어설픈(?) 생각이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늘 기대감을 깬다.

하지만 한 가지 답을 주는 사례가 우리 가까운 데에 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지중해마을이다. 이미 익히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겠지만 이 곳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놓고 빚어지는 대기업과 현지 주민 사이의 갈등해결에 있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노하우를 만들고 실제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점이 많다.

지중해마을은 유럽풍 건물이 한 구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마치 지중해의 고풍스런 동네를 연상시킨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외양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우리가 쉽게 갈 수 없는 영락없는 유럽의 분위기로, 이국적인 감성을 체험하기 위해 외지 방문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아오는 아산 지역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그런데 지중해마을의 탄생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놓고 대기업과 현지 주민들이 심각하게 반목한 데서 출발한다. 2005년 한적한 시골이던 이 곳에 삼성SDI가 탕정산업단지를 조성하게 되면서 주민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토지보상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그리고 이 틈을 노리고 몰려드는 외지 투기꾼들의 활개는 날이 갈수록 마을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을 모색하며 일부는 마을을 떠나고 또 일부는 평생의 터전에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주민들이 세계적 기업과 또 사활을 걸고 이를 유치하려는 자치단체에 맞서기란 무엇 하나 녹록지가 않았다.

이 때 분연히 일어선 건 역시 주민들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고향을 지키며 함께 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결국 64가구가 급거 의기투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짓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처음부터 한계에 봉착하는 것 뿐, 이 때 구세주처럼 손을 내민 것이 삼성과 아산시다. 이런 일에는 늘 그렇듯 주민들이 제풀에 지쳐 포기케 하는 것이 관례인데도 삼성과 아산시는 역발상으로 오히려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나섰다.

아산 지중해마을
아산 지중해마을

 

그렇게 하여 난제를 하나 둘 해결하면서 주민들과 함께했고 드디어 2013년, 고향에 남기로 한 주민의 세대수 대로 64개 건물을 지어 준공한 것이 오늘의 지중해마을이다. 지중해마을의 공식명칭은 ‘블루 크리스탈 빌리지(blue crystal village)’로 이는 삼성의 디스플레이 이름을 원용한 것이다. 이래저래 대기업과 주민 간의 상생의 의미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과 자치단체가 힘을 쏟다보니 당연히 이주민들을 위한 공동체 마을 아이디어는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힘입어 모든 건물들은 파르테논, 산토리니, 프로방스 등 지중해 연안의 세 가지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일단 이 곳에 들어오면 유럽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고도 남는다. 파르테논 양식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배흘림 기둥을 모티브로 했고, 산토리니 건축양식은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지중해 산토리니 섬의 건물을 본땄다고 한다. 물론 프로방스 건축양식은 격자형 창문과 성곽형식의 건물로 상징되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친환경 건축을 모방한 것이다. 모두 3층 건물로 지어져 대개 1,2층은 각종 상점으로 임대되고 3층은 건물주가 거주한다.

결국, 주로 농민이었던 현지 주민 64명은 현재 우아한 건물의 주인이 되어 자체 가게운영이나 임대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는 외지 광객들이 많지만 매년 시기에 맞춰 열리는 독특한 마을 축제와 이벤트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지중해마을로 유인하고 있다. 지중해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전국적으로 이국적 풍경의 마을을 조성해 대박을 치는 곳이 여럿으로,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과 미국마을, 경기 가평의 프랑스 마을(쁘띠프랑스), 제주의 스위스·프랑스마을 등을 들 수 있다. 경남 거제시는 아산 지중해마을을 벤치마킹해 거제지중해마을을 야심차게 조성하고 있다. 이 것도 시류의 트렌드라면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아산 지중해마을은 원주민들의 피해와 고통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놓고 주민-기업-자치단체라는 3자가 서로 협치의 해법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군다나 주민들의 입장에선 평생 삶의 터전인 고향도 지키고 세련된 주거환경에서 경제활동도 이어갈 수 있으니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이보다 더한 대안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주에는 이런 모양새 좋은 사례가 없을까? 하여,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 개발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는 지역에 역시 주민과 기업, 자치단체가 합심해 ‘청주 러시아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시종 지사의 브랜드인 한반도 강호축 발전구상은 호남에서 출발한 열차가 충북선을 통과해 강원과 북한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를 지나고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어져 유럽에까지 도달하는 게 최고의 상징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대표되는 연해주는 과거 우리민족과는 불가분의 관계인데다 특히 충북 출신 보재 이상설 선생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청주공항에서 직항로가 개설될 정도로 익숙할 뿐더라 이 곳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유럽양식이어서 ‘동방의 유럽’이라 불리지 않는가. 그러니 전국의 다른 지자체에 독일과 프랑스, 지중해, 미국을 모두 빼앗겼으니 청주는 러시아 마을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그 주체가 청주에 대규모 사업장을 구축한 LG가 될지 아니면 SK하이닉스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커트라인이 없다는 상상은 이래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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