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바뀌면 화폐 인물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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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뀌면 화폐 인물도 달라진다
  • 충청리뷰
  • 승인 2021.02.0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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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뒤끝 작렬’을 부리며 워싱턴을 떠난 후, 존 바이든 대통령의 새 정부는 몇 가지 신속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중에는 화폐 도안에 들어가는 인물을 바꾸는 내용도 들어있다.

지난 1월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신임 대변인 젠 사키는 ‘재무부가 20달러 지폐 앞면에 터브먼을 넣을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현재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1829~1837 재임)이 앞면에 있고, 뒷면에 백악관이 있다. 미국 제7대 대통령 잭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개척민 출신의 서민 대통령으로 대중민주주의를 확장했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원주민 탄압, 인종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다.

1928년부터 20달러에 올라간 잭슨 대신 새로 들어갈 인물로 거론된 해리엇 터브먼(1820~1913)은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다가 북부로 탈출한 후 다른 도망 노예의 탈출을 돕는 ‘지하철도’의 차장 역할을 했다. 할머니로 변장해서 농장에 숨어들기도 하는 등 수백 명을 무사히 안전지대까지 인도한 덕분에 흑인 ‘모세’로 불리기도 했다.

남북전쟁에서도 북군 측에 서서 ‘장군’이라 불릴 정도로 활약을 했고, 말년에는 여성참정권운동에도 참여했다. 그 시절은 물론 지금 시선으로 보더라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사실 이 화폐 도안 변경은 오바마 정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미국의 달러 지폐에는 거의 대부분 백인 남성이 새겨져 있다. 예외라면 1860년대 몇 해 유통된 20달러에 새겨진 포카혼타스와 1890년대 잠깐 1달러에 들어간 조지 워싱턴 대통령 영부인 정도였다. 여성 인물을 지폐에 넣자는 움직임이 일어나서 미국 헌법에 여성참정권을 명시한 지 100주년이 되는 2020년에 발행하는 계획으로 구체화 되었다. 재무부는 엎치락뒤치락 여론 수렴을 거쳐 20달러 지폐에 해리엇 터브먼을 넣는 것으로 결정했으나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취소인지 연기인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가 재편될 때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달라지듯이 대통령이 바뀌면 백악관의 벽에 걸리는 그림이나 장식물도 달라진다. 트럼프는 잭슨을 좋아해서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집무실에 그의 초상화를 걸었다. 다양성의 기치를 든 바이든 대통령은 잭슨 대신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를 걸고, 로자 파크스 등 민권운동가의 조각상을 배치했다고 한다. 정치 이념은 공약집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기념물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누구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연대하는지는 중요한 정치 행위이다.

우리나라도 5만원 신권을 2009년부터 발행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여성 인물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선덕여왕, 신사임당, 유관순 등이 경합을 벌이다가 신사임당으로 결정됐다. 한국은행은 2007년 11월 확정안을 발표하면서 신사임당을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로 소개해서 여성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조선 왕실의 남성이 독점하던 지폐 도안에 여성이 들어간 것은 환영할 일이었으나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현모양처’ 논리를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신사임당이 순종하는 현모양처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반론이 서로 부딪혔다, 우리나라 화폐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이 더 늘어나면 수그러들 수도 있는 논쟁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화폐 인물은 대체로 시대를 대표하는 선각자들이다.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화폐 인물로 만나는 시대의 도전자들』이라는 책을 쓴 알파고 시나씨는 고민 끝에 우리나라의 화폐 인물 분석을 빼놓았다고 밝혔다. 독립과 건국 영웅 등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인물’을 자국 화폐에 넣는다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통으로 기억해야 할 영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길 수 있다면 우리 화폐 인물도 달라질 것이다.

/이남희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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