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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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 한덕현
  • 승인 2021.03.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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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검찰총장을 그만두자마자 대권주자 지지도 1위를 다시 꿰찼다. LH 직원들의 직위를 이용한 땅투기에 국민적 공분이 들끓는 가운데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며 일종의 장외정치까지 예고했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윤석열 띄우기에 경쟁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윤석열은 당연히 차기 대선에 나설 것이고 승리까지도 따놓은 당상이 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윤석열 대망론에 비관적이다. 지금처럼 지지도가 갑자기 급상승할 경우 이런 생각은 오히려 더 하다. 공교롭게도 이에 공감을 표해준 사람이 안철수다. 그는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윤석열을 향해 “성급하게 정치를 시작하기보단 비전을 열심히 준비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은 참 정치감각이 떨어지는 안철수라고 늘 되뇌었지만 그래도 윤석열에겐 정치선배(?)임이 분명한 것같아 무릎을 쳤다. 안철수의 뼈있는 이 한마디에 윤석열의 앞으로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 정치입문 초기의 대중 스타성이나 신비감, 언변만을 본다면 안철수가 윤석열보다 훨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간간이 TV로 비쳐지는 윤석열의 경직된 모습과 화법을 보면 과연 저런 스타일이 제 살도 깎아먹는다는 정치라는 정글에서 통할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안철수의 충고는 우선 지금 윤석열에 따라다니는 신당창당이니 혹은 진중권과 서민, 손학규, 김한길 등이 거론되는 무슨 제3 지대니 하는 것들에 대한 경험자로서의 경고로도 들린다. 자신의 실패공식을 복기하는 것이다. 1992년 정주영과 박찬종, 19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2007년 문국현과 고건, 2012년 안철수, 2017년 반기문 등은 모두 한 때의 거침없는 인기, '바람'을 타고 대권에 욕심을 부렸지만 스타일만 구기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준비도 부족했지만 그들의 ‘비전’이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몇 몇은 아예 비전 자체도 없이 그저 신기루에 취해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당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윤석열의 지금까지 이미지는 스스로의 능력 이전에 잘 정비된 국가제도가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조직 말이다. 윤석열 만큼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해 세계최고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우리나라 ‘검찰’을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활용한 사람도 없다. 그의 원칙과 강골 이미지라는 것도 검찰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구든지 불러서 조사할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털어서 법정에 세웠다. 추측이지만 윤석열이 총장직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느꼈을 상실감은 아마도 지금까지 누려왔던 이러한 ‘힘’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에 의해 당연하게 보장됐던 울타리가 한 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다름아닌 ‘정치감각’의 한계다. 특히 공직에서 평생을 산 사람일수록 그 괴리감은 금방 드러난다. 고건, 반기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곧바로 정치력의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윤석열도 이미 그 개연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다름아닌 LH 땅투기 관련 발언이다. 그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LH 수사는 그가 끝까지 검찰에 남아 해결했어야 할 문제이지 결코 후배들한테 떠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윤석열의 LH 발언을 듣는 순간 오히려 그가 숨기고 싶은 것을 떠올렸다. 지지자들한테는 귀에 거슬리겠지만 윤석열을 결정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검찰이 마지막까지 피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수사’다. 불행하게도 윤석열은 정치수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명박, 박근혜 구속이 그랬고 조국가족에 대한 먼지털이가 그랬다. 정치수사 전력은 어쨌든 두고두고 업보다.

이를 염려해 이번엔 홍준표라는 검찰선배가 점잖게 한 마디 했다. 그는 “권력의 사냥개 노릇이나 하면 그런 꼴을 언젠가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았어야 했는데 만시지탄”이라고 꼬집었다. 만약 윤석열이 조국 딸의 같잖은 표창장이나 들쑤시는 태산명동서일필의 정치수사 대신 검찰에 계속 남아 이번 LH 비리 척결에 직을 걸었다면 요즘같은 정국에 아마도 차기 대권은 문밖에 더 바짝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과거 논란을 빚었던 ‘대통령 씨’는 따로 없더라도 그래도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늘이 내린다고 했잖은가. 대통령이 될 자질에 대해 인터넷의 한 기사에는 이런 글이 있다. "머리에 든 것이 있어야 하고, 상당한 사회적 경험이 있어야 하고, 복잡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있어야 하고, 지지기반이 있어야 하고, 충분하고 효과적인 전투력이 있어야 하고, 끈질긴 지구력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결기가 있어야 하고, 승리에 대한 높은 의지로 무장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단단한 맷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10년 이상의 정치적 경험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윤석열은 이같은 조건을 얼마나 갖췄을까. 야당 대표 주호영과 보수언론은 “윤석열이 사라진 세상, 도둑놈들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격정을 토했다. 맞는 말이다. 한데 윤석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선 후보 윤석열은 여전히 도둑놈을 잘 때려잡는 칼잡이, 포청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보장한 권력을 휘두르며 도둑놈을 잘 잡았다고 해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편견이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원천은 인간 문재인에 대한 원초적인 믿음과 신뢰였다. ‘대깨문’이란 말은 이래서 나왔다. 같은 맥락으로,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윤석열이 권력을 잡기 위해선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에겐 5년전의 문재인과 비교해 적이 너무 많다. 이미 불거진 가족관계 문제도 앞으로 본인의 검증에 있어 악재 중에 악재다. 아직은 전략적으로 지지하는 국민의힘도 때가 되면 본색을 드러낸다. 역으로 공격하다는 것이다.

정치활동의 개시 시점을 고민한다는 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법치와 정의를 외치는 강연이 아니라 먼저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는 일이다. 운전기사와 국밥을 말아먹는 이벤트 말고 그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진정 국민만을 위하겠다’를 실증할 수 있는 인간적 컨텐츠를 창출하라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윤석열에 환호한 근거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 즉 권력에 반기를 드는 고전적 영웅을 향한 기대감이었다면 인공지능이 지배할 앞으로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 빨리 검사와 칼잡이의 외투를 벗는 게 급선무다.

지금부터 윤석열이 할 일은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비록 한 두달에 불과할지언정 당장 토굴 속이라도 들어가 책에 파묻혀 검찰이라는 고정된 영역을 벗어나 인간 삶의 다양한 철학과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윤석열 대망론은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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