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십니까?
상태바
지금 행복하십니까?
  • 한덕현
  • 승인 2021.03.17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LH 직원들의 잇따른 자살이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부 정보를 악용하는 공직비리는 사회적 철퇴가 마땅하지만 그래도 남은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눈에 선하다. 그들만이 투기로써 돈을 추구하고 행복을 갈구하려다 그런 변을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식상한 얘기이지만 그들을 현혹시킨 대한민국 표 투기문화를 양산하고 방관했던 국가에 책임이 더 크다. 자살한 그들은 그나마 상식의 양심이라도 있다. 일말의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기에 극단의 선택을 했다고 본다. 그 정도의 땅투기는 새발의 피도 안되는 악덕 파렴치한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내세워 명망가로 행세하고 있잖은가.

LH파문, 그리고 요즘 광풍으로 분다는 주식과 아파트 붐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자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보통 무능한 게 아니다. 주식은 주자도 모르고 부동산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아파트는 젊을 때 딱 한 번 분양받아서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옮긴 후 그 것으로 끝이다. 언론에 종사하면서 끊임없이 접하는 기사 아이템이 아파트 관련이지만 그렇다고 아파트 구입이나 투기를 고민한 적은 없다. 물론 기본 생활비 외엔 여윳 돈이 없는 월급쟁이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이 것도 개인 삶에 있어 무슨 흐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근자에 참 이상할 정도로 오랜 세월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던 친구와 지인들의 방문이 잦다. 그들도 나이가 들어 과거의 인연을 들추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어쨌든 색다른 느낌을 경험한다. 금융회사를 임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요즘엔 손주 보는 재미로 산다는 군대 동기는 서울에서 불쑥 찾아와 나보고 ‘일’을 쉽게 놓지 말라고 헤어질 때까지 신신 당부한다. 40여년전 훈련단에서 조교를 하며 다른 동료들로부터 ‘바늘과 실’이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실로 오랜만에 만났어도 서로 나누는 어투는 그 때와 똑같았다.

한 고등학교 동창은 고맙게도 나를 기억하며 인터넷을 뒤져 청주까지 왔다. 조용한 친구였는데 대학을 졸업하고선 대기업에 들어가 아파트 사업을 전담하다가 몇 년전에 퇴직했다고 한다.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말수가 적던 지난날의 친구가 아니었다. 밤새 숙소로 장소를 옮기면서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쳇말로 뿌리를 뽑다가 다음날 상경했다. 그 친구 역시 입에 달고 하는 얘기가 “가늘게 오래 오래 일하라”는 충고였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게 없는 처지이지만 정작 본인은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엊그제는 전혀 뜻밖의 분들한테 전화를 받고 한 동안 설레이기까지 했다. 90년 대 초 충북도청 출입기자 당시 알고 지내던 간부 두 분이 만나고 싶다며 미리 장소까지 정해 연락을 해왔다. 언론계 동료들이 이름만 들으면 금방 기억해낼 수 있는 분들이다. 본인들이 주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에서 나에 대해 얘기하다가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80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해 보이지만 한 분은 위암수술을 받아서인지 예전에 비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다. 그 분들이 점심 내내 한 말은 “막상 공직을 나와 이것 저것 하다보니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엔 나 또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앞으로 즐겁게 살기 위한 다섯가지 조건을 전도(?)하느라 애쓴다. 그렇다고 무슨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유명 인사들에 의해 대중에게 공론화된 것도 아니다. 다만 100세 시대를 맞아 주변에서 목격한 사례나 실제로 스스로의 경험치를 고려해서 생각해 본 것일 뿐이다. 순서대로 열거하면 건강, 일, 돈, 취미, 친구이다. 아무래도 젊은층보다는 나같은 후반기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들한테 해당될 것이다.

제 아무리 모든 걸 누리던 사람들도 건강을 잃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가 즐겨 입에 올리는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후반기 삶에 있어 돈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이 것이 안전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곧바로 곤궁, 비참해진다. 하지만 돈도 벌고 사회적 관계까지 유지하려면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돈보다 일이 우위라고 본다. 실제로 은퇴나 퇴직 등으로 돌연 일을 놓고 힘들게 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공원과 산을 찾고 혼자 여행을 즐긴다고 해서 그 상실감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건강, 일, 돈,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됐다고 해도 취미와 친구가 없으면 삶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청주 미호천을 지나다가 하천부지에 조성된 파크골프장이나 우드볼 경기장에 마치 구름떼처럼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을 이 곳으로 유인한 것은 늦은 나이의 취미와 친구에 대한 갈증이다. 나이들어 삶이 외롭고 처량하지 않으려면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세 명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백번이고도 맞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어 한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등이다. 가만히 곱씹어보면 역시 세기의 철인(哲人) 답게 참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미천한 식견으로 굳이 정리한다면, 지나치고 넘치게 되면 되레 탈이 나고 행복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진리를 깨우치고 있다.

땅과 아파트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다만 LH직원은 직업상 그 유혹을 먼저 느꼈을 것이고 이 것이 사회감시망에 걸려 국민들로부터 치도곤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돈좀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 중에 이런 경우가 어디 여기 뿐이겠는가.

편견인지는 몰라도 내가 아는 돈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늘 쫓기고 계산적으로 산다. 그러니 인생의 풍부한 맛을 모른다. 수도권에 수십억원 대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지인은 그 것 뿐이지 삶에 있어 운신의 폭은 평범한 직장인보다도 못하다. 돈 씀씀이만 봐도 그렇다. 이들에게 품위있는 삶의 요건이라는 사랑과 인문, 철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집착하고 욕심부리며 살다가 어느날 개념없이 스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