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도 허투루 사지 않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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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도 허투루 사지 않거늘
  • 충청리뷰
  • 승인 2021.03.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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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성‘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박재성‘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평일에 사무실 근처에서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고 나면 당연한 순서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두꺼비생태공원을 산책한다. 누가 밥을 사면 커피는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듯이 동료가 밥을 사면 나는 커피를 사고 더불어 카페에서 제공하는 포인트 적립 및 할인쿠폰의 혜택도 꼼꼼히 챙긴다. 그렇게 해서 모은 포인트는 대략 커피 열두 잔 구매시 한 잔의 무료 혜택이 주어지는데 약 3,000원 안팎에 해당하는 그 커피를 무료로 마시게 되는 날은 횡재를 한 기분이다.

카페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경제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듯 커피 한 잔을 사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는데, 공무원들이 국가나 지자체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를 물 쓰듯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한 예가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충북 모 지자체의 ‘2020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정이었다.

별칭이 ‘우리 동네 미술’인 이 사업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유형의 미술활동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공간의 품격을 제고하기 위해 각 시·군·구 지자체에 4억 원씩 균등 배정된 공모사업으로 총 948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전국적 사업이다. 그런데 충북의 모 지자체는 이 사업의 최종 선정자로 한 팀(37명)을 선정하였는데 그 팀 소속 미술인 중 해당 지자체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미술인은 단 한 명뿐이었고 충북 타 지자체 출신은 6명, 나머지 30명은 타 시·도 미술인으로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 물론 이 사업은 전국 지자체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사업으로, 지원자는 자신의 주민등록지가 아닌 다른 지차제의 공모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오직 1개 사업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다.

따라서 위 지자체가 선정한 팀의 구성원 대부분이 타 지역 미술인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항변은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위 지자체는 스스로 공고한 요강에서 ‘지역예술인 우선 참여 원칙’이라는 안내문구를 명시하여 이 사업 취지가 지역예술인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점을 충분히 숙지했음에도, 심사기준에는 100점 만점 중 단지 10점만을 ‘전체인원 중 지역미술인 참여율’ 항목으로 배분했다. 그리고 위 기준에 따라 선정된 그 팀은 지역미술인이 단 한 명뿐이어서 그 항목의 배점이 0점(10% 이상 20% 미만시 1점)임에도 나머지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이 되었다.

일반적인 미술작품 공모전이었다면 공간적 조화성, 작품의 예술성 등이 중요한 심사기준이었겠지만 이 사업은 심미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공고에 기재된 것처럼 ‘주민의 참여·소통, 지역자원 및 지역스토리 반영 등 지역과 일상에 기반을 둔 미술품을 만들어 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문화향유를 증진’하는데 주안점이 있으므로 그에 맞는 심사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음에도 잘못 만든 심사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했으니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그 지역에 미술인이 없다면 타 지역 미술인의 참여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미술인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작품유형을 ‘설치형(조각)’으로만 한정했기에 고령의 미술인이 많았던 그 지역에서 참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옥천도 똑같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위 지자체와 정반대다. 시인 정지용과 ‘향수’의 고장인 옥천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채로운 색깔로 옷을 입힌 얼룩배기 황소벤치를 여러 개 만들어서 공공장소에 비치했다. 또 다른 지자체는 칙칙하고 음습한 지하도의 벽면을 청량감 있는 바다 속으로 표현하여 그 공간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다시 돌아가 문제의 지자체는 선정팀으로부터 총 4개의 조각품을 받아 숲체험 휴양마을에 설치했는데 그 작품의 예술성은 차치하고 주민들에게 지역스토리와 공감을 주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작품당 1억 원의 예산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자기 돈으로 한 잔의 커피를 살 때와 같은 꼼꼼함은 발휘되었을지 의구심이 든다.

/박재성 ‘법률사무소 직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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