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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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
  • 한덕현
  • 승인 2021.04.0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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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4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민의 관심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후보자 TV토론만 보더라도 여야가 이번 선거에 얼마나 사활을 걸고 있는지 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사자들은 투표 함의 뚜껑이 열릴 때까지 평상심을 유지 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간 있었던 숱한 여 론조사들이 어느 정도 예측성을 견지해 준다고 해도 워낙 진영과 민심의 변수가 많은 터라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석에서 갑자기 많아 지는 얘기가 있다. 재보선 결과에 따른 문 재인 대통령의 거취 문제다. 당연히 진영 에 따라 갈린다. 진보는 레임덕을 우려하 고 보수는 이를 기정사실화한다. 보수 인 사들은 한 술 더 떠 극단의 추락, 즉 이명 박과 박근혜의 전철을 저주에 가까울 정 도로 주문하기도 한다. 문재인도 이명박 박근혜와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논란에 또다른 불 쏘시개를 제공하는 것이 윤석열 대망론에 조언자 로 회자되고 있는 사람들 의 정치 훈수다. 손학규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윤 석열에게 새로운 정치세 력 결집을 촉구하면서 “행여 보복은 없어야 한 다. 보복은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는 후진 정치다. 정 치권의 얄팍한 술수에 귀를 기울이거나, 권력을 잡기 위해 파당에 휩쓸리면 안 된 다”며 전임대통령에게 보복하지 않겠다 는 선언이라도 해야한다고 했다. 언론들 의 칼럼에도 비슷한 논조가 잦아지고 있 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은 모 언 론 인터뷰에서 “정치보복은 없어야 한다” 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이 독보적 인 1위를 차지하는 등 김종인의 말대로 ‘별의 순간’을 잡았다 하더라도 그의 대망 론에 여전히 불가론의 입장인 나로서는 일련의 과정이 영 불편하기만 하다. 한 나 라의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예측되는 것 도 그렇고 약싹빠른 사람들이 차기권력 에 기웃거리려는 의도도 그렇다. 그간 윤 석열의 행보를 보면 설령 정치보복을 안 하겠다고 해도 시쳇말로 문서로써 공증 하기까지는 믿지 못하겠다. 자신에게 불 편한 조국 한 사람을 내려앉히기 위해 온 가족을 멸문지화로 몰고가는 권력형 결 기를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가 칼 잡이 검사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적인 면 모로 보여지기까지는 윤석열 불가론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 정적인 취약점을 극복하기가 녹록지 않 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맞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분히 국민감성에 치 우쳐 조성된 갑작스런 여론이 그를 키워 준 만큼 앞으로도 그는 자신을 둘러싼 여 론이라는 것의 추동(推動)을 쉽게 벗어나 거나 간과하지 못한다. 본인은 그러고 싶 어도 못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도 강성 친문과 문빠의 굴 레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후임정권의 전임정권에 대한 정치보 복 얘기가 유난히 심했던 때가 임명박정 권 말기 시점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 당 전당대회에선 “노무현이 당한 만큼 갚 아 주겠다”, “받은 대로 돌려 주겠다”는 격앙된 말이 거침없이 쏟아졌고 실제로 이명박 정권 내내 당한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살기(殺氣)로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노무현을 자살케 한 원 죄를 반드시 MB에게 묻겠다면서 그 시발 점을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으로 특 정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유 산인 '보복의 정치'는 피할 수 없게 된 것 이다. 실제로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둘이 영어의 몸이 된 작금의 현실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바람이 하나도 어 긋나지 않았다. 한데 지금,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대자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그 때 보다도 오히려 더하다. 그러기에 윤석열 뿐만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문제 의 해법을 선뜻 주창하기가 쉽지 않은 것 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복 정치의 악순환이 불식될 뻔한 계기가 있었다. 평 생 권력의 탄압에 시달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이 숙명 의 정적이라는 김영삼 전임 대통령을 마 지막까지 지켜준 것이 그렇다. 집권과 동 시에 김대중 역시 IMF 구제금융을 불러 들여 나라를 파산케 한 김영삼을 단죄해 야 한다는 여론의 엄청난 압박에 부딪혔 지만 그는 산전수전 다겪은 정치 9단의 노 련한 언변과 대처로 이를 피해 갔다. 이 때 문에 나라가 쪽박을 찰 때까지도 그저 자 신만의 생각에 매몰돼 ‘학실히’만 외치다 가 되레 확실하게 감옥에 갈 수 있었던 김 영삼은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 은 채 2대(代)를 넘기지 못하고 이명박 정 권에 의해 다시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정 치개혁을 미완의 숙제로 남긴채 권좌에 서 내려온 노무현은 후임정권에 의해 온 갖 수모를 당하다 끝내 바위에서 몸을 던 졌고 그 측근들은 줄줄이 사법처리되거 나 옷을 벗었다. 노무현의 절친 강금원이 대표적으로 그는 계속된 검찰수사와 구 속으로 병까지 얻게되자 나중엔 아예 폐 인이 되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한 사람의 입장에선 말 그대로 뼛속까지 사 무치는 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보복의 정치는 무 수한 희생자를 양산했다. 더군다나 역사 서에 무슨 무슨 학살로 기록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증오의 집단화는 필히 살생의 집단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냉정하게 따 지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 것과 조 금도 다르지 않다. 정치는 타협과 상생이 아닌 오로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집단의 저주로 넘쳐나고 있고 이에 휘둘리는 국민 들은 반으로 딱 갈라져 어 느덧 가족의 밥상머리조 차 불편하게 됐다. 자칫 정치얘기를 꺼냈다간 십 중팔구 감정의 다툼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만큼 참 허접스러운 자리 도 없다. 임기 초기에는 마치 천둥치는 카리스마 를 휘두르다가도 말년만 되면 그렇게 초라해질 수가 없었다. 외국 으로 쫓겨나고, 갇혀 칩거했으며, 감옥에 나 들락거리며 끝내 분을 삭이지 못하면 바위로 올라가 극단의 선택을 했다. 단순 히 대통령제의 폐단이나 레임덕 때문만 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통령문화’가 이토 록 저열하고 저급하다는 것이다. 역대 대 통령 중에 그나마 노후를 보장받은 경우 는 김대중 김영삼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동 안 엄청난 시련 즉 투쟁, 투옥, 연금, 단식, 납치, 좌절 등 지난한 역정을 딛고 일어섰 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가 권 력을 쟁취했지 누가 만들어주지는 않았 다. 한 순간의 여론에 힘입어 별을 잡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아무나, 어? 하다가 대통령이 되 면 그의 말년은 또 필히 불행해지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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