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홍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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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홍과 형제
  • 한덕현
  • 승인 2021.04.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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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박수홍이 그동안 팬들과 시청자들로부터 호감을 사기까지는 그의 선한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코미디언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욕심없어 보이는, 약간은 설익고 어설픈 분위기가 되레 그를 돋보이게 한다. 냉정하게 따지면 예능프로그램 사회자 박수홍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 좌중을 압도하기보단 출연자들의 재치와 순발력에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본인은 가식없는 환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하는데 이런 풍모가 보는 이로 하여금 신뢰를 쌓게 했고 그의 이름 석 자는 동료 연예인 누구보다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기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놓고 친형과 끝내 소송까지 가게 된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안타깝다’이다. 이같은 쟁송이 늘 그렇듯 결국에는 양측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길 게 뻔하다. 유명 연예인이기에 언론들이 그냥 놔둘 리가 없고 그 때마다 드러나는 건 기밀을 존중받아야할 사생활이 될 것이다. 이미 박수홍의 여친논란이 불거지면서 세인들의 관심은 누구의 잘 잘못보다는 자극적인 흥밋거리에 더 쏠리기 시작했다.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이지만 그렇더라도 서로 극단까지는 안 갔으면 좋겠다. 마음의 상처는 둘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같이 받게 된다.

형제간 갈등, 특히 재산다툼으로 빚어지는 감정싸움은 한 가정사에 있어서는 비극중에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사회에선 부모와 자식 사이만이 천륜이 아니고 형제 또한 그 어떠한 관계보다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거의 20~30여년이나 한솥밥을 먹게 되는 형제, 그러다보니 부모의 입장에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형제는 곧 천륜의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데 주변에선 형제들 간의 쇳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게 현실이다. 누구는 부모의 상속 재산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또 누구는 형제간 이전투구 끝에 한 쪽이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도 한다. 최근엔 그야말로 법 없어도 산다고 할 만큼 심성고은 한 지인으로부터 형제간 상속다툼을 겪고 나서는 세상을 원망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망연함을 삭이기도 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무려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장동건과 원빈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주연했고, 또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당연히 흥행의 소지가 컸겠지만 그보다도 이 영화가 미증유의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결정적 동인은 한국인의 뿌리깊은 정서를 건드린 그 스토리에 있다. 바로 형제애(兄弟愛)다. 6·25가 터지면서 어처구니없게도 형제는 전쟁터로 끌려가 끝내는 남북한군으로 엇갈려 총을 겨눠야 했고, 그럼에도 자신의 안위는 뒤로한 채 오직 동생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고초를 자처하는 형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현실에서 나누고 싶은 ‘형제간 의리’의 그 실체를 공감하고 감동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똑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라고 해서 다 같을 수는 없다. 피를 나눈 형제이지만 성격이나 지능, 취미 그리고 요즘같은 시국에선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창세기에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동생에 대한 하느님의 편애를 시기한 게 원인이다.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의 심리적 갈등, 이른바 카인 콤플렉스는 태어나자마자 경쟁부터 배워야하는 현 시대에선 지난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 내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서로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남보다 못한 게 형제지간이다. 원초적으로 애정과 경쟁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는 게 형제 사이이기 때문에 특히 중장년이 된 이후엔 형제는 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자칫 ‘형제라는 이름의 타인’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소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은 오늘날 형제들이 겪는 관계의 숙명이 100년전에도 똑같았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변변치 못한 신분에서 입신양명한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러운 가장과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다 끝내 살해까지 공모하는 장남과 차남, 이런 위기에서도 가장 정상적인 개념으로 가정을 지키려고 애썼던 막내 셋째, 작품 내내 이들이 토해내는 격정은 한솥밥을 먹다가도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는 어쩔 수없이 정서적 갈등을 겪어야 하는 현 시대의 형제들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대기업들의 형제 다툼, 이른바 형제의 난(亂)으로 통칭되는 것들을 보자. 근자만 해도 삼성, 현대, 롯데, 금호그룹 등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특히 삼성 이병철의 세 아들인 맹희, 창희, 건희가 벌인 형제의 난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회자된다. 형제들간에 서로 저주와 삿대질까지 주고받으며 세상을 희극화 시켰지만 지난해 10월 25일 건희를 마지막으로 세 사람 모두 저 세상 사람이 됐다. 형제간의 다툼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도 결국엔 이 한 가지를 깨우친다. “우리는 아무도 누구를 심판할 수 없다. 내가 오늘을 정직하게 살았다면 그 사람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맞는 얘기다.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 형제 사이는 건강해진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형제’나 ‘형제애’를 머리에 그리게 되면 떳떳하거나 당당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렇다고 한, 두 살 터울의 4형제에게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과거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겠다. 4형제가 모두 60을 훌쩍 넘길 때까지도 끈끈한 우애는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는데 최근 사달이 났다. 고령이신 어머니로 인해 고부간 갈등이 생기면서 형제들의 만남도 다소 버거워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만한 나이가 되니 재산 등 경제적 수준은 젊은 시절의 직업 선책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평생 월급쟁이로 전전한 나를 포함한 둘과 일찌감치 장사와 사업에 뛰어든 나머지 둘은 형편에 있어 비교가 안된다. 때문에 간혹 집안에 큰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 경제적 책임은 자연스럽게(?) 후자인 둘의 몫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래도 형제간의 우애를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묵시적인 ‘원칙’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형제들간에 뭘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기, 큰 형님의 말은 무조건 존중하기 등이다. 다행이 이제껏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조카들이 성인이 되면서 형제들도 각 가정의 삶에 치중하다보니 젊은 시절만큼의 소통과 교류를 나누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믿을 건 형제들이니, 형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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