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과 메릴스트립, 이들이 반가운 이유
상태바
윤여정과 메릴스트립, 이들이 반가운 이유
  • 한덕현
  • 승인 2021.04.21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은 과연 현실이 될까. 오는 26일(한국시간)을 기다리는 영화팬들의 카운트 다운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된다. 방송 생중계가 예고됐고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의 특별전도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데뷔 56년차를 맞은 윤여정은 이미 글로벌 스타가 됐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전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을 휩쓸며 어느덧 37관왕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국민들의 기대대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만 받으면 수상 이력에 방점을 찍게 된다.

연이은 쾌거를 뉴스로 접하며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수상 소감을 말하는 윤여정의 여유있는 유머와 위트다. 비약인지는 몰라도 인종차별이 국제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아마도 서양인들의 동양인 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외신들이 환호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의 솔직하고도 재치넘치는 수상소감이 외신을 장식할 때마다 같은 국민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위안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윤여정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비대면 화상으로 진행된 영국 아카데미 행사에서 수상이 결정되자 감격적인 표정으로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특히 이번 상은 고상한 척 하는(snobbish) 것으로 알려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들이 나를 좋은 배우라고 인정한 것이라서 너무 너무 영광이다”고 말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국의 한 연예매체는 “사상 최고의 수상 소감이었다. 윤여정은 전설이다”며 아예 윤비어천가(?)를 불었다.

국제 무대를 향한 윤여정의 색깔있는 어법은 올해 오스카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지난 해 초 제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부터 주목됐다. 윤여정은 ‘미나리' 상영 이후 진행된 무대인사에서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하는 다른 연기자에 이어 마이크를 건네 받고는 “다들 진지하다. 그런데 난 저렇게 진지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해 미국 관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같은 일련의 소감에 대해 국내 영화평론가들이 “직선과 곡선, 변주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진정한 달변가”라고 표현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사실 이 말은 윤여정의 연기력, 마치 팔색조를 보는 것같은 그의 ‘내공’을 시사한다고 봐야 한다.

최근 윤여정에 관한 스토리 중에서 단연 압권은 배우 메릴 스트립과의 비교다. 공교롭게도 둘은 나이도 74세(윤)와 72세(메릴)로 거의 같다. 지난달 미국 ABC 방송의 유명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간판 여배우 메릴 스트립과 닮았다는 질문을 받자 윤여정은 “저를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고 했는데, 메릴 스트리프는 정작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시 특유의 시크(chic)함으로 반응해 웃음을 샀다. 외신기자들의 같은 질문에도 그는 “비교되는 것에 감사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내 이름은 윤여정, 나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며 자신을 향한 칭찬에도 겸손하고 당당하게 응수했다.

하지만 윤여정과 메릴 스트립, 이 두 사람의 비교에 나는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희열을 느낀다. 닮아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기 때문이다. 우선 외모가 그렇다. 둘은 으레 명배우라는 수식어에 따라다니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마치 이웃집의 푼수떼기 아줌마같은 평범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정작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데에 있다. 연기력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얼굴의 연기력으로, 작품에서 둘은 말보다는 표정으로 모든 걸 압도한다.

메릴 스트립이 누구인가. 언론이 꼽는 오늘날 최고의 배우로 불리는 그는 자신이 맡은 배역과 그 연기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아카데미상에 무려 21차례나 후보로 지명되어 그 중에서 3번의 연기상을 수상했다. 77년 데뷔한 메릴 스트립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디어 헌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존재를 알려 왔지만 그녀가 스타로서 주목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82년 개봉된 영화 ‘소피의 선택'이다.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것도 서러운 판에 애인이 레지스탕스였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보내지고, 그 과정에서 아들과 딸 두 명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여인의 기구한 삶으로 전쟁의 야만성을 처절하게 표현해 내는 그 연기력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 팬들에게 메릴 스트립이라는 이름을 또 한 번 각인시킨 영화는 95년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남편과 아들이 여행을 떠나 혼자 집을 지키던 가정 주부에게 길을 묻는 낯선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 역)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은 다른 배우들은 절대로 흉내내지 못할 표정연기로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아마도 중년 여인의 흔들리는 내면 연기로는 더 이상의 것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윤여정은 어떤가. 연기력으로 치자면 메릴 스트립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아마 외신들은 이 점을 높이 산지도 모른다. 이번 ‘미나리’는 물론이고 남편이 성불구가 되자 15년 만에 다른 남자를 사귀며 강렬하고 파격적인 존재감을 열연한 ‘바람난 가족'(2003), 역시 선배 하녀로 출연해 압도적인 표현력을 선보인 ‘하녀'(2010),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박카스 할머니 역을 맡아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낸 ‘죽여주는 여자'(2016) 등은 윤여정의 연기력이 메릴 스트립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둘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라 그 연기를 통해 ‘인간’과 ‘삶’을 누구보다도 실체적 사실로써 시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닮았다.

기생충에 이어 영화 미나리와 윤여정이 예상대로 아카데미상 각 부문에서 수상한다면 우리나라는 정보 통신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 자동차와 선박 조선기술, IT와 AI 인공지능을 석권하고 마지막 단계인 인류문화의 새로운 발상지, 한국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바람은 윤여정의 수상이 결정되는 순간, 그의 여우조연상 후보 소식에 헐~!이라고 반응했다는 조영남이 뒷 배경으로 ‘바람난 가족’이 상영되는 축하 무대에 서서 자신이 번안곡으로 불러 히트를 친 톰 존스의 딜라일라(Delilah)를 열창하는 것이다. 배신한 여인에 대한 복수, 하지만 윤여정은 자신을 힘들게 한 세상을 향한 복수를 이보다 더 멋있게 할 수 있을까? 망상이지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