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해야 주목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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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해야 주목받는 사회
  • 한덕현
  • 승인 2021.05.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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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페미니즘, 특히 이대남(20대 남자)과 이대녀(20대 여자)를 놓고 벌이는 진중권과 이준석의 논쟁이 화제다. 이들의 입싸움이 앞으로도 더 진척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재미 있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면 하는 기대감에서다.

둘은 목하 갖은 매체를 넘나들며 이름을 알리는 이른바 잘난 사람들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외부로 드러난 그들의 겉포장이 아닌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돌연 엄습한다. 시국이나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그들이 과연 그럴만한 지식이나 역량을 갖췄는지는 이번처럼 서로 만만한 싸움을 벌여 바닥을 드러내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두 사람에게 “꼬리를 내리는 순간 진다”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둘의 충돌은 타이밍이 좋았다. 지난 4.7재보궐선거에서 2030세대들의 표심이 특정됐고 향후에도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될 것이라 예측되는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페미니즘 논쟁은 당장 시대의 의제라는 점에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때마침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여성징병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또 호주제가 폐지된지 15년만에 자녀가 엄마의 성을 가질 수 있는 법 개정이 추진됨에 따라 어차피 ‘페미니즘’은 또 한번의 고비를 맞게 됐다.

진중권 이준석 둘의 감정대립은 실은 형이하학적인 데서 출발했다. 2011년 불과 26세에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하던 이준석은 2012년 5월 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던 문재인의 참수 만화를 링크했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삭제하고 나중에 문을 직접 만나 사과까지 하게 된다. 이를 두고 진중권이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이준석을 젊은애, 실성, 징그러움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하게 된다. 한낱 풋내기로 폄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이전에 진중권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인쇄된 쇼핑백 사진을 올려 비난을 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에 진중권은 “재미있는 패러디이자 약간의 장난일 뿐 참수와는 다른 미학”이라고 해명했지만 이준석은 “졸렬하다”고 맞받아쳐 둘의 악연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준석은 지난 4.7재보선에 대해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고 한국사회의 원초적인 남성우월주의를 비판하는 진중권은 “재보선에서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투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남’ 표심 얘기만 떠들어대고 ‘이대녀’ 표심 얘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준석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안티페미니즘을 중단하라”고 일갈했다.

나는 이준석의 페미니즘 과잉 주장이나 진중권의 남성우월주의 비판이 둘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아닌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하고 또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젠더 감수성에서 출발해야 하는 페미니즘의 본질이 근자에 왜곡, 과잉되고 있다는 데도 공감하면서도 한국사회가 아직도 견고한 남성우월주의로 인해 그 폐해가 심각함을 누구보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의제보다도 진중권과 이준석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둘은 물론 박식하고 논리가 정연하다. 방송토론에서도 압도적인 이지(理智)를 발휘한다. 그런데 편견일지 몰라도 둘의 말을 듣다보면 공감보다는 불편함이 앞선다. 무엇보다도 덕(德)이 없어 보인다. 원래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둘은 필요 이상으로 ‘현학적’임을 추구하려 한다. 구사하는 말들도 상대에 대해 다분히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물론 이러한 어법이 둘을 드러낸 측면도 있겠지만 지나치다보면 싫증이 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중앙의 한 언론 행사에서 당대의 최고 논객이라던 장기표, 노무현, 김근태를 초청해 시국에 대해 토론한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들의 역사와 시공을 넘나드는 격론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이를 지켜보는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말은 머리와 지식만이 아닌 가슴과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울림을 준다고.... 그들은 치열하게 살다가 정치에 입문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고 본다. 다만 장기표는 이후에 여러 구설로 실망스러웠지만 말이다. 한데 진중권 이준석에게는 머리와 지식은 감지 되는데 가슴과 경험은 느끼지 못하겠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감흥을 못 느끼는 것이다.

요즘 재미나는 책 하나가 또 화제다. 김내훈의 <프로보커터>다. 대학원에서 포퓰리즘을 공부한다는 저자는 이제 시장의 성패는 ‘품질 경쟁’이 아니라 ‘주목 경쟁’에 달려 있다며 우리사회의 분노와 막말로 상징되는 정서적 자극을 공론화해 ‘프로보커터’를 처음으로 해부했다. 저자는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프로보커터(Provocateur)’가 공동체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프로보커터라는 말은 ‘유발하다’ ‘화나게 하다’ ‘도발하다’ 등의 의미인 영어 ‘provoke’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을 도발하는 사람’ ‘선동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부제목이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인 이 책에서 저자는 요즘 입만 열었다 하면 뉴스를 타는 사람들 즉 진중권, 서민, 김어준, 강용석 등을 정치적 편향성으로 사회를 혼돈케 하는 프로보커터라고 표현한다. 우선 진중권에 대해선 ‘싸움꾼형 프로보커터’, 김어준에 대해선 ‘음모론적-예언가형 프로보커터’라고 했다.

또한 단국대 서민 교수는 ‘게으르거나 무능한 프로보커터’, 현재 배우 김부선의 변호인을 맡아 맹활약중인(?) 강용석 전 의원은 ‘조잡한 틈새시장형 프로보커터’라고 꼬집었다. 저자는 특히 프로보커터들은 ‘혐오의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별짓기 프레임을 활용해 ‘그들’을 혐오하고 공격해 ‘우리’를 만들어낸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며 깐죽대는 것도 심리적 여유가 받쳐줄 때 가능한 도발 기술이다. 주목이 걷히고 여유를 잃으면 억지와 악만 남았다. 프로보커터의 말기 증상이다.”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진중권을 들었다.

저자는 결국 시민들이 프로보커터가 조장하고 있는 공론장의 오염을 경계하고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들의 말과 글을 인용해 온 언론에 대해서도 “프로보커터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며 경각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막상 당사자들의 반응이 궁금한데 나 역시 이들의 잦은 언론 노출이 달갑지 않은 입장이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이젠 이들이 ‘도발’로써 여론을 만들고 주도하는 행태가 대중들로부터 집단 비토를 받았으면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이제 이들도 그 시효가 끝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신 당분간 ‘관종’의 유혹에서 벗어나 본인부터 성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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