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그 떠남에 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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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그 떠남에 대한 유혹
  • 한덕현
  • 승인 2021.06.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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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금은 처음에 비해 시들해졌지만 한 종편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여전히 중장년 남자들에게 인기다.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다가도 이 프로가 나오면 집중해서 보기 일쑤다. 요즘은 케이블 TV가 너무 많이 재탕, 삼탕해서 흠이지만 말이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혹은 가정 문제로, 이 것도 아니면 일종의 사회 부적응으로 대개 산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토리가 천편일률적이어서 식상함을 줄만 할텐데도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출연자들의 소소한 재미에 잠시 빠져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나도 한번 저렇게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언뜻언뜻 엄습하는 것이다.

이는 주변과 사람들에게 구애받지 않는 ‘자유의 삶’과, 그리고 어느날 훌쩍 떠나고 싶은 욕망에 대한 공감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처받고 사연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의지해 힐링과 치유를 얻는다는 내용들은 비록 그 것이 신파적 요소를 안고 있더라도 전혀 어설프지가 않다. 그만큼 이 시대의 중장년들에겐 생각과 몸을 가볍게 하고자 하는 ‘계기’와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삶이 외로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계청의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이혼 건수는 2만5206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 증가한 반면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1만191건으로 전년 동기(8719건)보다 무려 16.9%나 늘었다. 이 수치는 4년 이하 신혼부부의 이혼 건수(4492건)보다 2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젊은층들의 결혼 기피로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황혼재혼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혼인 건수는 21만4000 건으로 전년보다 10.7%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 남녀의 황혼재혼은 9938건으로 전년(9811건)보다 127건(1.3%) 늘었다. 4년 전인 2016년(8229건)에 비하면 20.7% 급증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혼 상담소를 찾는 시니어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으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소에 접수된 60세 이상 시니어층의 이혼 상담 건수는 총 1154명으로 전체 연령대의 27.2%에 달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426명(43.5%)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비율이 무려 7.4배나 뛰었다고 한다.

세상이 달라져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통계다. 황혼이혼이 많아지고 또 남자들의 상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황혼재혼이 급증하고 있다면 분명 이런 현상들은 서로 상관관계에서 빚어지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황혼이혼이라는 자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로 여성들의 문제제기로 이슈화됐지만 이젠 남녀가 똑같이 이 문제를 고민한다고 봐야 할 것같다. 꼭 세태의 변화, 그리고 최근 코로나로 인한 영향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어느덧 우리 앞에 나타난 변화의 가속도는 가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것이다. 그 첫 번째 화두를 나는 나이가 든 사람들의 부부관(觀) 재정립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들한테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지인과 주변인들에게 수시로 들어서인지 이젠 뻔한 담론이 되었지만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가정에서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진다. 이는 논리 이전에 현실이다. 자녀들은 아버지보다는 엄마와 더욱 유착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아버지와 자녀들의 대화는 점점 더 소원해진다.

부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매일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가장 이른바 ‘삼식(三食)이’는 공공의 적 1호이고, 부인이 외출할 때 “어디 가냐”고 물었다간 맞아 죽는다는 우스갯 소리는 이래서 나온다. 황혼이혼 상담이 시니어 남성들한테서 급증했다는 조사결과를 쉽게 간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또 있다.

지금까지 황혼이혼은 ‘여성들이 숨죽여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미화됐지만 이젠 남자들한테도 ‘억울하게 눌려살던 세상을 확 바꾸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혼재혼이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선뜻 공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설령 그 것이 남녀 각자가 홀몸이 된 상태에서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황혼재혼 역시 한 번 실패한 사람들에게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근거는 이렇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부부관계 또한 그렇다. 제 아무리 선남선녀가 만나 커플이 되어도 그 느낌과 감성을 늙을 때까지 가져간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황혼재혼도 다르지 않다. 초장엔 서로 상실감을 채워주며 제2의 삶을 꿈꾸도록 하겠지만 일단 ‘결혼’이라는 것으로 현실적 부부관계가 설정되면 오히려 긴장과 스릴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유’라는 것의 역설, 예를 들어 늘 옆에 있고 또 공기와 물처럼 늘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오히려 소중함을 덜 인식하게 되는 이치와 똑같다.

물론 아주 특별한(?) 부부, 예를 들어 나이가 들거나 세월이 흘러서도 흔들림없이 서로에게 집착하는 경우는 다르다. 주변에도 이런 사례가 더러 있지만 아주 극소수이고 대개의 현실은 안 그렇다. 세계인들에게 완벽한 관계, 완벽한 동반자임을 자랑하던 빌게이츠 부부도 얼마 전 결국 갈라지며 온갖 추문을 양산했다.

그러기에 어떤 유형의 부부관계도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남·여가 서로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엔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나 존재냐>(to have or to be)도 좋은 교훈이 된다. 문명에 있어 총체적으로 재앙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인간의 ‘소유’ 욕구 였음을 상기한다면 서로는 상대를 ‘존재적 실존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대 사회는 소유가치 중심에서 존재가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잖은가.

때문에 부부관계 또한 서로를 소유 개념이 아닌 실존의 존재, 더 나아가 ‘인격적 주체’로서 인식할 때만이 오랫동안 바람직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작금의 세태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산으로 들어간들, 평생 살던 반려자와 헤어지며 황혼재혼을 한다 한들, 그 것이 곧 나(我)라는 존재와 주체를 완벽하게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라도 꿈틀거리니, 이를 어찌 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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