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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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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
  • 정명숙
  • 승인 2006.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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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겨울이다. 작열하던 한 여름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다 못해 바삭하게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찬 바람에 뒹군다. 낙엽 쌓인 길은 사색에 깊이 빠지게 한다. 가을이 끝나 겨울로 들어서면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혼자 걷고는 한다.

그 길은 가을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장엄미를 느끼게도 하였으며 발밑에 밟히는 낙엽들은 지난날을 반추하고 숙연해지게도 한다.유년의 따스한 봄을 지나 치열한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던 여름, 이젠 중년의 모습으로 조락을 두려워하는 나이가 돼버린 지금까지 부질없는 생각과 일에 매달려 귀중한 삶을 낭비하지는 않았는가, 갈색의 낙엽은 내게 삶에 의미를 물으며 외로움에 아파하는 이는 없는지 한번쯤 돌아보게 한다.

작년 이때쯤 미평 소년원엘 갔었다.교정 뒷산에는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들이 한 바탕 불꽃잔치를 끝내고 갈잎이 되어 찬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던 날이었다. 원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기숙사와 교실을 둘러보았다.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도 깨끗하고 분위기도 차분해 보였으나 정작 아이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약하고 어린나무들이 충분한 햇살과 양분을 받지 못하면 잎이 말라버리듯 관심과 사랑이 부족했던 그 아이들은 푸르게 싱그럽지 못하고 마른 잎으로 서걱거리고 있었다.

누구든 언젠가는 홀로 뿌리내리고 성장해야하는 시절이 있다. 그 과정은 힘겨운 만큼 값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하늘과 바람과 물이 나무를 지켜주고 성장시키듯이 홀로 가는 애들에게 눈길을 주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었더라면 그들의 인생행로에서 비행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절이 정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꿈을 잠재운 아이들의 외롭고 서러운 눈빛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보다 내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던 그 날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바람에 뒹구는 낙엽 때문일까.

쌓여있는 낙엽위로 나뭇잎 하나하나의 사연도 쌓여있다. 사람이 늙어 죽는 것처럼 어떤 잎은 늙어 떨어졌을 것이고 환경의 갑작스런 변화와 영양상태, 또는 병 때문에 단풍들지 못하고 말라 떨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마른 잎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모두 다르듯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모두 다를것이다.

나는 이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날이 오면 소년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싱싱한 잎으로 다시 돋아나 밝은 삶 속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다 오색단풍으로 곱게 물들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여정을 걸어갔으면 싶다. 산다는 것은 그때 단 한번뿐이며 삶에 있어서 반복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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