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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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스케치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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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사라 져 갈 무렵이면 내안에서는 그리움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 한다. 고운 단풍잎에 꿈 담고, 사랑실어 바람 속으로 날리던 여고시절...교련복이 멋졌던 아이에게 노란 은행잎으로 띄우던 사랑의연서, 갈래머리에 베레모, 하얀 제비칼라의 추억들을 스케치 하며 이 가을, 낙엽 서성이는 길모퉁이에 서 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목마름에 심한 갈증이 인다. 이렇게 가을은 무심히 보냈던 시절, 잊혀진 날들, 또 세월 따라 잊혀져 간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찬바람 문틈으로 스며들 때면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곡차 한 잔 나누고 싶다. 넉넉하지 않아도 나누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건, 세월 따라 깊어져가는 정 때문이리라

바람에 낙엽 하나! 가을 여백에 고운 선율로 은발이 고운 할머니의 하얀 코고무신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할머닌 가던 길 멈추고 낙엽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미소로...
아주 한참을...그렇게 서서.

아니, 나 자신이 그러고 싶은 거였다. 희망처럼... 먼 훗날에.

평온함, 담대함, 여유로움, 온유함으로 순응하는 미소, 그것은 오랜 연륜에서 만이 빚어 낼 수 있는 미소 일게다. 아마도...

낙엽! 그들은 내게 늘 이별, 외로움, 슬픔이었다. 그러나 나이 듦에 따라 낙엽은 내게 소리 없는 메시지를 던진다. 땅에 떨어져 봄에 싹을 틔워내는 한 알의 밀알처럼, 낙엽은 봄의 태동을 위한 산고다.

넓은 잎을 통해 활엽수들은 많은 분량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겨울에는 흙이 얼어 뿌리에 수분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물을 보존 하는 것이 매우 중요 하다고 한다. 잎을 달고 있을 경우 치명적인 수분 감소가 일어난다.

버려야 살 수 있는 나무들의 삶! 이제 나무들은 냉정한 버림을 시작했다. 이 가을! 낙엽의 몸짓은 가슴 저며내는 아름다운 날갯짓이다.

어느덧, 바지런 했던 시간들이 사라져 버린 휑한 포도밭, 바람이 흔들고 지나간다. 낙엽 사이로 언뜻 언뜻 뵌다. 한 두 송이 포도 이삭들이... 바라만 보아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포도 한 알 입안에 넣었다. 상큼하다.

나그네의 목마름을 적셔준 이 정성, 어느 탄산수맛이 이보다 더 할까!

쓸쓸함과 풍성함이 공유된 이 가을 여백에 쏟아놓은 농심, 그것은 오직 가을속에서 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요 사랑이다

일일이 따지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고, 나누고픈 마음의 여유, 그것은 흙의 순수함이요 어머니 같은 애틋함이요 온화함이요 넉넉함이다. 이렇게 자연을 닮은 마음들이 있기에 고단한 삶이지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감동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살아가야 될 이유가 되는 곳이다.

지극한 어느 농군의 마음으로 이 가을 여백이 온통 향기로 그윽하다.

가을!
그곳엔 이별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넉넉함이 있다

자연의 깊은 배려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 굳건히 겨울나기를 해야지. 세월의 모퉁이에서 뒤 돌아 보며 다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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