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 벽초 생가는 ‘빨갱이 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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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 벽초 생가는 ‘빨갱이 집’이 아니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3.04.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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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450-1번지는 지금 ‘단장’ 중이다. 괴산군이 7억2000만원에 사들여 오는 2005년경까지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일 예정인 이 곳은 한일합방 때 일제에 항거하여 자결한 금산군수 홍범식의 생가이자 그 유명한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뿐 아니라 이 집은 괴산 삼일만세운동의 거사를 준비한 역사적인 곳이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 때 이곳은 ‘빨갱이의 집’으로 낙인찍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벽초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홍명희의 ‘홍’자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렸다. 보훈단체 관계자들은 ‘소설 임꺽정 저자 홍명희 생갗라는 표지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전범자’의 생가에 어떻게 이름을 버젓이 붙이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벽초생가 복원을 주장하는 문학단체와 괴산의 보훈단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길고 지루한 ‘숨박꼭질’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가 완전 청산된 것은 아니다. 괴산군은 반발을 우려해 홍명희보다 ‘홍범식생가 복원’이라는 타이틀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이 일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보훈단체에서 난리칠 것”이라며 만남 자체를 꺼렸다. 괴산군의 업무 담당자 역시 이들 단체에 시달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편치 않다고 했다.


우리는 외국의 대문호 생가를 일부러 찾아가 예술의 향기를 맡고 온다. 그리고 잘 보존된 그들의 생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고무 찬양’이나 ‘이적의 목적’이 없는 순수한 동기로 벽초 생가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단 이데올로기를 들이대며 ‘빨갱이’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묵살하고 만다. 그러는 사이 작가의 생가는 허물어지고 원형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벽초생가는 앞으로 근대문학자료관이나 한국의 근대건축문화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벽초 생가를 분단 이데올로기에 갇혀 바라볼 게 아니고 소설 ‘임꺽정’이 태어난 문학의 산실이자, 괴산 삼일만세운동을 잉태한 역사적 장소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통일시대로 가는 이 때 갖는 올바른 시각일 것이다. 더욱이 홍범식은 절절한 유서를 남기고 일제에 항거할 것을 벽초에게 당부하며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자결,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건국훈장까지 수여했다.


현재 이 가옥은 허물어지고 무너져 옛날의 영광을 찾을 길이 없다. 얼마전까지 일반인이 기거한 그 곳은 이런 문화재적 가치를 뒤로 하고 일반 주택으로 남아 있었다. 다행히 괴산군에서는 도 문화재로 지정해 더 이상의 훼손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괴산군도 벽초 생가를 복원하면서 관 주도로 진행해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홍범식·홍명희 생가 보전을 위한 모임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음에도 자문 한 번 구하지 않아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원형을 잃고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은 문화재나, 영 엉뚱한 방향으로 분칠한 어색한 생가들을 많이 보아 왔다. 벽초 생가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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