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열정과 바꿀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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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열정과 바꿀 수 있는 것은?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7.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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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_ CCS충북방송 아나운서

   
청소년 시절 유난히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공부였다. 독자에게 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메스껍게 하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숙제랑 밥도 거르며 유일하게 일삼아 했던 것은 바로 녹음 공부였다.

말하자면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통째로 공 테이프에 녹음하고 실제 DJ부분을 잘라서 다시 내 음성으로 편집을 한다. 그렇게 완성된 테이프는 ‘정미영의 음악캠프’라는 타이틀로 ‘불법’ 제작되어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사실 짝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작업이 즐겁다 보니 내공이 쌓여 맘에 드는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게 되었다. 공 테이프 구입비 단돈 500원으로 제작되었지만 한 사람만을 위해 시작되었기에 상품 가치는 매우 높았다.

특히 선물을 받은 남자친구들의 경우 내 매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 처음 문장을 모두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는 소중한 이여”로 시작했으니 ‘캬~’ 어찌 헤어날 수 있겠는가?

녹음은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내 방에서 이루어졌다. 혹시 녹음할 때 소음이라도 들어 갈까봐 우리 식구들은 내 방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그런데 간 큰 녀석이 하나 있었다. 마당에서 키우던 덩치가 큰 누렁이. 어찌나 오지랖이 넓은지 우리 집만 지키는 게 아니라 동네 오가는 사람들마다 보고 짖어댄다.

가끔 소독차가 지날 때 면 30분을 목 놓아 짖어댔다. 막아야만 했다. 소리도 질러보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도 하고 사료를 한 부대 가져다줬지만 부질없었다. 나만 난폭해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와 녹음작업을 하고 있는데 주위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누렁이는 보이지 않고 빈 밥그릇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한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부모는 늘 자식을 위해 어렵지만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땡볕아래 축구장을 누비고 다니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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