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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캠코더 들고 역사찾아 나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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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캠코더 들고 역사찾아 나서는 길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7.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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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 _ 충북역사문화연대 교육부장

나는 요즘 거의 매일 영동에 간다. 이렇게 싸돌아다니는 게 나의 직업이다. 날이 더워져서 에어컨 안 나오는 마티즈 타고 고속도로를 탈 때면 조금 괴롭다. 그러나 영동만 들어서면, 울창한 산과 강과 바람 덕에 더위를 모른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놈이 촌스럽다며, 안 들겠다고 팽개쳐, 내 차지가 된 멜빵가방엔 디카와 녹음기, 수첩과 자료로 비좁다. 그리고 어깨엔 캠코더와 삼발이를 맨다.

왜 이렇게 준비물이 많냐구? 나의 출장은 옛이야기를 묻고 찍고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채록하는 이야기는 먼 일제 때부터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다. 마을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꾸뻑 인사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전쟁 때 여기에서 보도연맹원으로 죽은 사람이 있나요?”하면, “그건 왜 물어?”하고 의심스레 쳐다본다. “예,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분들 명예회복 시켜 드리려구요”하면, 그제서야 “그때 하도대리에서 많이 죽었지. 그 상황을 잘 알려면 남우현 찾아가 봐” 하신다.

남우현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찾아간 날은 할아버지가 들에 나가셨다. 이틀 후 다시 찾아가 황간향교에서 만나 뵐 수 있었다. “어쩐 일이래요?”, “예. 6.25때 마을역사를 알려구요”하니, 전쟁 나기 전 <청년방위대>에 근무했던 일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상촌국민학교에서 약 40~50명이 한 달간 훈련을 받았는데, 하루는 영동읍에 신무기교육을 받으러 간다구 20명을 차출하더라구”.

그런데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다. 경산으로 간 20명 청년방위대원 중 10여명 국민보도연맹원이 경산코발트광산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 9명이 하도대리 청년들이었다.

이제까지 영동지역 보도연맹원들은 1950년 7월 20일 영동읍 어서실, 석쟁이재와 상촌면 상도대리와 고자리에서 300명 가량이 처형되었다고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촌면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경산코발트 광산에까지 끌려가서 집단처형 되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년방위대는 대한청년단이라는 단체에서 시작됐지만, 전쟁 때는 국방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준군사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이 궁금증은 남우현 할아버지의 3시간에 걸친 증언을 통해 해소될 수 있었다. “1950년 7월 20일 대전이 함락되고, 영동에는 다음날인 7월 21일 소개령이 내려졌어. 마을 청년 11명이 피난증을 가지고 피난을 갔어. (영동군)매곡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에는 경북 김천 가서 잤지. 그러다가 경북 경산을 가게 됐는데, 코발트 광산의 여관에 묵게 됐어. 하루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지에무씨(GMC)에 사람을 가득 싣고, 어디론가 달려. 트럭 네 귀퉁이에는 경찰이 한사람씩 앉아있고 말여. 한 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40대가 지나가.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간이나 그러는 겨. 나중에는 노인도 실려 있더라고. 근데 그때는 트럭에 실린 사람이 누구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

이들이 보도연맹원들이고, 영동군 청년방위대원 중 보도연맹원들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남우현씨는 방위군 장교 박홍기를 만났다. 박홍기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경산초등학교 운동장에 청년방위대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장부책을 놓고 하는 말이 ‘보도도연맹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 눈감고 손들어’하데.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나가니까 교실로 데리고 갔어. 이들을 코발트광산으로 끌고 가 전부 처형했지. 내가 미리 내막을 알았더라면 동네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해서 상촌면 하도대리에서만 9명의 꽃다운 청년들이 코발트광산에서 영문도 모른 채 학살되었다.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아직도 꼿꼿하게 옛일을 기억하는 어르신들 만나러 오늘도 마티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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