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과 ‘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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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과 ‘원 코리아’
  • 안태희
  • 승인 2008.08.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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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희 정치경제부장

최근 베이징 올림픽 취재를 위해 며칠간 중국을 다녀왔다. 베이징 수도공항에 내리자 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매캐함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버스에 타니 이번에는 에어컨 바람에서도 역한 기름냄새가 났다. 말로만 듣던 베이징의 공해가 나를 엄습하나 싶은 마음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첫 날을 맞았다.

   
안태희 기자
그러나 베이징올림픽 체류기간 내내 기자를 우울하게 한 것은 머나먼 남의 땅에서 느낀 분단 국민의 서러움일 것이다. 텐진에서 열린 북한과 독일과의 여자축구예선전.

남쪽에서 온 코리아응원단과 북한응원단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각 응원을 해야 했다. 남북공동응원이 무산되자 이름을 바꾼 코리아응원단측이 즉석에서 공동응원을 제안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량이 월등한 북한이 독일에 1대 0으로 지는 바람에 맥이 빠진 코리아응원단은 혹시나 북한선수들이 이쪽에 인사라도 할까 목매 기다렸지만 그것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응원단원 가운데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응원을 했는데,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경기내내 목이 터져라 응원한 코리아응원단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때는 대부분 목이 잠겼다. 남도 북도 아닌 중국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어찌 자랑스러울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응원의 노래치고는 분단된 민족의 현실을 중국인들에게 드러내는 것 같아 몸둘바를 몰랐다. 중국관중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일을 일방적으로 응원한 것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만 경기가 끝난뒤 경기장 밖에서 두 줄로 걸어가던 10여명의 북한 남자 응원단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것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그들도 우리의 응원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도 전해졌다.

코리아응원단이 신명을 내지 못해서일까. 북경과기대체육관에서 열린 유도경기에서 북한 계순희 선수가 코리아응원단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2회전에서 어이없게 지더니, 결승전에 진출한 왕기춘 선수도 10여초만에 한판패를 당했다. ‘우생순’ 여자 핸드볼팀 경기는 응원단측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표를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해 입장하지 못하고 대신 400명이 북경시내 관광을 해야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주제로 한 올림픽 현장에서마저 ‘원 코리아’를 보지 못해 귀국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라는 함성이 비록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떠나갔으나, 먼 훗날 반드시 평화와 통일의 큰 울림으로 되돌아오기를 기원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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