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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운동동의 양수척효자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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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운동동의 양수척효자비 이야기
  • 충북인뉴스
  • 승인 2008.08.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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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호 청주삼백리 대표

청주의 제일봉 선도산에서 서쪽으로 긴 골짜기를 이루며 월운천이 흐르다가 보은에서 오는 미태재 옛길과 만나는 지점이 있으니 지명이 비선거리이다. 비선거리는 말 그대로 비가 서있는 거리이지만 지명이 있게 한 양수척효자비에 담겨있는 귀중한 내용이 있어 소개를 하고자 한다.

   

월운천 비선거리 옆에 있는 양수척효자비는 조선 성종 때 백정신분으로 전국 최초로 받은 효자비라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양수척효자비를 설명하면 정사에는 한 백정이 효자 경연 선생의 꾸짖음에 감화를 받아 효자가 되였다는 이야기이나, 아주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젊어서 부모에게 불효하던 월운천변의 백정이 경연선생 덕분에 효자가 되고난 후 모친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청주 읍성에 들어가 한약(때로는 개고기라고도 함)을 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갑자기 비가 내려 개울이 넘치는데, 아마 요즘 말하는 국지성 소나기를 말하는 것 같다. 집 앞에 있는 월운천이 넘쳐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하늘을 보며 한탄을 하고 있자, 그 때 갑자기 월운천 물(水)이 한척(尺)정도가 갈라져 그 사이로 건너 집으로 올 수 있었고 약을 달여 모친의 병환이 낮게 하였다는 청주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바다가 아닌 시냇물이 갈라졌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나 원래 천민은 성도 없이 이름도 돌쇠 등으로 불렸는데 성은 천민들의 집단 이름인 양, 소, 부곡에서 양(楊 버들양, 천민들이 집단으로 모여 버드나무를 이용한 광주리 등을 제작하던 장소)에서 따고, 이름은 수척이라 짓고 “楊水尺孝子碑 ” 라 비석을 세운 것 같다.

사실여부는 그렇다 하고 조선시대 양반들도 받기 어려운 효자비를 백정의 신분으로 받았다는데 큰 뜻이 있고, 더불어 월오동 입구가 비선거리라는 지명까지 효자비에서 얻고 있으니 비석이 주는 의미가 더 크게 보인다.

청주지역의 대표적인 효자마을인 효촌리의 효자 이야기와 함께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교육적인 좋은 자료가 되고 있음에도 효자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씁쓸한 것은 천민이 받은 효자비여서인지 골목길에 팽개치듯이 내버려 두었고,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이다. 이미 한차례 차에 부딪혀 부서진 흔적이 있다.

알만한 사람들, 할만한 곳에 효자비를 마땅한 곳으로 옮겨 보호와 관리의 필요성을 설명하니 대답만 시원스럽게 나오고 후속 조치가 없어 안타깝다. 문화재는 꼭 지정된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양수척효자비보다 약 200년(조선 숙종)후 경남 산청 지방에도 백정신분으로 받은 조귀천 효자비가 있어 산청지역에서는 전국 최초로 받은 백정의 효자비라고 전국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있는 것도 방치하고 있다. 좋은 내용 좋은 자료가 있음에도 활용을 못하고 보존도 못한다는 청주사람들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빠른 시일 안에 양수척효자비가 안전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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