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해명, 스스로 쌓은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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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해명, 스스로 쌓은 의혹들
  • 안태희 기자
  • 승인 2009.03.10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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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정파문...지역분열 양상으로 치달아

   
▲ 오선준씨가 충북도에 제출한 지휘석사 학위증 사본.
2009년 3월 9일 봄기운이 완연하고 모든 사람들이 생기가 넘치듯 활기찬 월요일 오후였다. 그러나 청주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오선준(52)씨는 빨갛게 충혈된 눈가, 바짝 마른 얼굴피부, 불안한 듯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 눈동자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오선준씨에게는 지난 2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비들여 졸업증 다시발급
지난 3월 8일. 기자를 만나기 하루 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그의 손에는 불가리아 소피아국립음악원에서 재발급한 영문 졸업증명서 사본(CERTIFICATE DUBLICATE No 172)과 불가리아어로 된 ‘학위증’, 졸업증명서 분실을 공고한 불가리아 현지신문 사본, 신문광고를 냈다는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다 합쳐봐야 A4용지 4장이다. 이 증서 등을 얻기 위해 그는 5일 동안 항공료와 체재비, 그리고 칠십이 넘은 가이드 수고비등으로 수 백만원을 썼다.

졸업증명서에는 ‘오선준씨는 1995년 9월부터 1997년 8월까지 2년동안 지휘마스터(Conducting Master of music degree)를 마쳤다’는 불가리아 소피아국립음악원(Republic of Bulgaria State Academy of Music-Sofia) 총장(Rector) 명의의 사인이 들어 있다. 서명일은 2009년 3월이다. 그가 불가리아에 도착해 신문에 졸업증명서 원본을 분실했다는 공고를 낸뒤 다시 발급받은 증명서이다.
불가리아어로 된 학위증의 내용은 비슷한데, 눈에 띈 것은 학점이 5.50이라는 것이다. 만점은 6.00이다.

불가리아어로 된 문서에 의문이 가시지 않는 시점에서 영문으로 된 서한을 입수했다. 지난 6일 대학이 충북도로 보낸 문서였다. 충북도의 곽임근 문화관광국장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이 문서에는 졸업증명서와 동일한 사인을 한 몸 칠러브(D. Momtchilov) 총장의 글이 담겨 있었다.

   
▲ 충북도가 소피아국립음악원으로부터 받은 서한 사본.
“귀하께, 한국시민인 오선준씨가 1995/1996학년에 카잔드지에프(V.Kazandjiev) 교수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 등록했으며, 1997년 8월 13일 이 과정을 우수한 성적(with exellent mark)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오선준씨는 1997년 8월 18일에 등록번호 205인 졸업증명서를 발급 받았습니다”

의도된(?) 기억력, 특이한 인연
이에앞서 2월 24일 충북도는 그를 충북도립챔버오케스트라 예술감독겸 상임지휘자로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자신이 만든 말이 새로운 의혹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배운 과정은 4학기 중 세 학기는 한국에 파견된 교수들에게 1주일에 1회 정도씩 수업을 받고, 나머지 한 학기는 소피아국립음악원에 가서 배우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으로 소피아국립음악원 재학 시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는. 초기에는 재학기간이 졸업증명서에 있는 2년간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도에 제출한 서류가 재학증명서인지, 졸업증명서인지도 헷갈렸다. 당연히 10개월만에 과정을 이수한 게 말이 되느냐는 의혹을 샀다. 교사시절에 다닌 것인지, 청주시립교향악단 단무장 시절에 시작한 것인지도 의문점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그가 졸업증명서 원본을 잃어버린 것이다. 진짜 졸업장이 있는 것이냐로 눈초리가 모아졌다.

그의 기억력말고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는 지난 2007년 3개월 동안 정우택 도지사에게 색소폰을 가르쳐 무대에 오르게 만들었다. 강습비는 받지 않았다. 2년이 흐른 뒤인 지난 2월 정 지사는 2차 공고에서 최종후보에 오른 2명 가운데 그를 낙점했다. 또 다른 인연은 도립예술단을 창단하는 실무책임자인 문화정책과장 이모씨가 손위처남이라는 것이다. 민심은 동요했고, 의혹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충북도의 지휘자 공모 과정은 어땠을까.

허술한 예술행정
원본을 잃어버린 오선준씨는 결국 소피아국립음악원에서 받은 영문으로 된 증명서(Certificate)를 충북도에 제출했다. 이 증명서는 ‘오선준씨는 1995/1996학년에 지휘석사를 받았을 수(may be) 있음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갖고 있다.

   
▲ 오선준씨가 최근 재발급받은 졸업증명서 사본.
충북도 실무진은 이 문서를 지휘석사 자격증으로 일단 받아들였다. 타 응시자의 러시아어로 된 증명서도 인정했다. 러시아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진정성이 있는 문서로 일단 받아들인 것이며, 최종검증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도립예술단을 창단한 업무처리치고는 허술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오선준씨가 낸 서류와 졸업증명서의 차이, 즉 졸업년도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도관계자는 “이 문서를 첨부해서 소피아에 확인을 요청했었다. 그 대학교수가 연도를 잘못 기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문서는 최종졸업증명서가 도착한 이후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서류뭉치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특히 1차공모에서는 면접을 심사위원이 맡고, 2차공모에서는 도청 실국장들이 맡는다든지, 1차공모에서는 없었던 ‘현직교수의 겸임허가원’을 요구한다든지,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지휘자공모방법도 의혹을 부추긴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충북도는 두 차례에 걸친 지휘자 모집공고에서 ‘도립챔버오케스트라’와 ‘도립오케스트라’를 번갈아 사용해 음악인들의 비웃음을 샀다. 도 관계자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능력있는 사람이 오고 품위있고, 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식명칭은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충북도립챔버오케스트라이다.

다시 최근으로 돌아와서, 충북도는 지난 9일 의혹이 다 해소됐으므로 오선준씨를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증명서 진위여부등이 새로운 의혹으로 제기됐다. 공무원노조 충북본부,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청주경실련도 성명서를 내고 정우택 지사의 사과와 자진사퇴, 재공모등을 촉구했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제2의 김양희사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 충북도가 재불가리아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받은 몸칠러프 총장의 명함 사본.
이런 가운데 지역음악인들 뿐만 아니라 기자가 접촉한 상당수 지역예술인들은 이번 사태를 매우 답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 예술관계자는 “오선준씨 개인문제는 개인문제이고, 충북도립예술단을 시작으로 충북예술이 발전해나가야 하는데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음악인들 가운데는 자신과 인터뷰한 기사를 왜곡되게 실었다면서 기자를 고소하겠다고 벼르는 이도 있고, 글을 작성해 이번 사태의 본질을 밝히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반대로 자기 텃밭을 뺏기지 않으려고 뭉치는 지역음악인들의 행태를 가만두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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