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내연기관 같은 심혈관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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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내연기관 같은 심혈관 질환
  • 경철수
  • 승인 2009.04.0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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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청주성모병원 내과장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젊은 남자환자가 반신마비가 되어 들어왔고 검사 중인데, 환자의 부인이 나에게 꼭 연락을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는 것이다. 환자의 이름을 물어봤다. 고교시절 담임선생님의 이름이었다. 이제 막 마흔을 넘긴 분인데……. 응급실로 가는 내내 심장이 고동쳤다.

나를 알아보는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간단한 인사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과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의 왼쪽 반은 꼼지락도 하지 않았다. 이미 촬영된 뇌 컴퓨터 전산화촬영(brain CT)에서 뇌출혈이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고혈압성 뇌출혈의 소견이다. '아~, 혈압 약 드시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씀드릴 걸…….'

고등학교 선생님이란 직업이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의 연장이었다. 좁은 학교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잦은 회식으로 유 선생님은 술도 많이 드시고 담배 또한 즐기셨다. 직장 건강검진에서 혈중 콜레스테롤도 조금 높다고 경고를 받았고, 몇 년째 혈압도 높아 2차 검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혈압 약에 대한 거부감으로 지키지도 못할 운동과 식이조절에만 매달리다 허송세월을 보내셨던 것이다. 사람의 심혈관은 자동차의 내연기관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출퇴근을 위하여 배기량 1000cc의 경차를 구매했다면 이 차를 10년 이상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급출발 급제동은 삼가야 하고 좋은 휘발유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냉각수와 엔진오일도 바꾸고, 정기점검으로 고장 나기 전에 낡은 부품은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

사람의 혈관도 마찬가지. 20대 중반까지 성장하다 노화의 길을 걷는 혈관. 피 안에 콜레스테롤과 당이 세포 내로 흡수되어 대사되고 배출되지 않는다. 비만은 마치 경차의 내연기관에 대형승용차의 차체를 얹은 꼴. 무리하면 엔진(심장)이 오래 버틸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차(몸)를 이렇게 굴리면, 당연히 엔진(심장)에서 연기가 나고, 파이프(혈관)에 녹(콜레스테롤)이 끼고 압력을 못 이기고 터지거나 막히기 마련이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부품을 바꾸면 되지만,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같은 만화 속 세상이 아니면 사람의 몸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무쇠로 만든 자동차도 10년 타기가 어려운데, 아무리 자기회복능력이 뛰어난 인체라고 해도 누적되면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 결국 폐차되는 건 순식간이 된다.

최근 5년간 과로사로 판정되어 유족보상금을 받은 공무원이 301명이고, 전체 노동자 중 매년 2000여명이 과로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OECD 국가 중 40대 남성의 사망률 1위의 '대~한 민국'을 외치게 된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과로에 너무 초점이 맞추어져 과로를 돌연사의 직접적이며 중요한 원인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다. 단지 과로(過勞)했다고 돌연(突然) 죽을 정도로 우리 몸은 약하지 않다.

중년의 나이에 갑자기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규칙한 생활, 운동부족, 흡연, 음주 등으로 건강관리가 오랫동안 잘못되었고, 이로 인하여 비만(특히 복부비만), 고지혈증, 고혈당, 고혈압이 오랫동안 전신의 혈관을 고장 낸 것이다. 즉, 큰 혈관, 작은 혈관 가릴 것 없이 동맥경화란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가, 심장의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고 갑자기 혈전(피떡)이 막히면 심근경색이 생기고, 뇌혈관이 막히면 뇌경색, 터지면 뇌출혈이 생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돌연사의 이런 심장혈관과 뇌혈관질환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을까. 첫째, 생활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운전습관이 나쁘면 비싼 고급차도 금세 망가지기 마련이다. 술자리 횟수를 줄이고, 염분과 칼로리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가능하면 일주일에 3회 땀을 흘릴 정도 운동을 하면 좋지만,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고, 배에 힘을 주고 빠르게 걷는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좋다.

둘째, 필요하면 적절한 치료를 빨리 받아야한다. 혈관질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혈압이다. 이미 동맥경화가 진행되었고 혈관의 탄성이 떨어져 혈압이 높아졌다면 생활습관을 아무리 좋게 바꾸어도 혈관압을 낮추는 효과는 미미하며, 생활습관을 바꾸기란 쉽지도 않다. 그런데, ‘혈압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는다.’란 낭설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경제위기로 더욱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직장에서 받는 업무와 스트레스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때 일수록 ‘건강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자! 대한민국 중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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