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떨어질까봐 통합 반대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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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떨어질까봐 통합 반대하는 겨”
  • 안태희 기자
  • 승인 2009.07.14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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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찬성 대다수... “통합해야 청주.청원 발전”
반대.유보...“지금은 때가 아니다”, “세금 올라”

[청원민심 따라잡기]

“통합을 해야 하는 겨. 청주시와 청원군이 합쳐야 되는 겨. 청원군이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밥그릇 떨어질까봐 그러는 겨”

   
▲ 윤경한.박경목씨

13일 오전 11시쯤 청원군 강외면 오송초등학교에 마련된 오송농협조합장 투표장 앞에서 선 촌로들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에 대해 강한 어조로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당초 노인들은 통합에 반대할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는 청원군민들의 발언은 청원군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청원군민들의 진짜 민심을 들으려는 기자의 고민은 컸다. 통합 찬성측이든, 자체시승격 주장측이든 어느측을 통해서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순수성을 의심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직접 부딪치는 것. 오송을 시작점으로 한 200km에 달하는 청원민심 따라잡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친구지간인 윤경한씨(75.강외면 서평리)와 박종목씨(75)는 청주.청원 통합에 대해 나름대로 근거를 댔다. 윤씨는 직접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청주와 청원군이 이렇게 계란프라이형인데 청주시를 가운데 놓고 분리를 하는게 말이 되느냐”라면서 “누가 봐도 청원시(자체시)는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김주연씨(67)는 “충주댐 수몰 때문에 여기에 정착한 게 지난 1984년”이라면서 “청주청원은 통합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시골노인들도 ‘통합찬성’
'신선한 충격‘을 준 노인들을 뒤로하고 옥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산읍사무소 사거리에 있는 편의점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박순규씨(81.옥산읍 신촌리)에게 다가갔다.

“저 어르신, 신문사에서 나왔는데요. 요즘 말이 많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나 청원시 자체 승격에 대한 생각을 여쭙겠습니다”

   
▲ 박상경씨

“통합을 해야지. 어디를 가든 청주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말여. 최근에 청원군민신문을 보니까 통합에 반대한다는 사람에게만 물어서 반대를 위한 기사를 썼더구만. 그렇지만 동네사람 거의 다 통합에 찬성한다고” “군수가 잘해야 돼. 왜 독단적으로 하고 그래.”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30대 나이로 보이는 여성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농촌지역 노인들의 생각이 통합찬성이라는게 또다시 증명됐다. 그들이 기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볼수는 없었다.

만일 청주.청원 통합관련 투표가 실시될 경우 청원군민들의 표심을 가장 크게 대변할 오창과학산업단지에 들렀다. 8847세대가 살고 있는 대단위 아파트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른바 ‘유모차 부대’가 이곳 저곳에서 눈에 띄는 가운데 한라비발디에 들어서니 두 명의 주부가 각각 어린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아파트 주민 박상경씨(30)는 다른 이유에서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을 바라고 있었다. 남편이 내수에 있는 직장을 다녀서 3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박씨는 “청원군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른다”라면서 “통합시가 되면 청원군 보다 더 큰 이미지가 되고,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도 찬성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박씨 앞에는 오창으로 이사한 뒤 태어난 3살짜리 딸이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커서 남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 ‘청원군’이라고 대답해야 할 지, ‘청주시’라고 할지 부모들이 고민에 싸여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세 곳에서 모두 통합에 찬성하는 인터뷰만 하고나자 슬그머니 불안감이 스며든다. 마치 짜고 치는 것 아니냐고 누가 뒤에서 소리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다.

“세금만 올라” 주장도
그래서 다행스러웠다. 내수읍에 들러 이 동네에서 꽤 알려진 내수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고 있는 직원들 사이에서 또렷하게 통합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 송모씨
주인인 것처럼 보이는 40대 주부는 “통합되면 세금하고 땅값만 올라간다”라고 말했다. 통합반대를 주장하는 측이 주장하던 그 레퍼토리 그대로다. 그는 “지금 여기 땅값이 얼마인줄 아느냐”라면서 “지금도 350만원인데, 통합하면 더 올라갈 것 아니냐”라고 신경질적인 어투를 숨기지 않았다.

이제는 미원과 부강, 두 곳의 주요 ‘포스트’만 남았다.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 찾아온 미원버스터미널. 터미널 옆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 주민들이 있었다. 여러 명이 있어서 공통으로 질문을 했는데, 한 노인이 말을 받았다. “통합해야지 무슨 소리여”라고 말했다. “청원군에서는 자체 시승격을 주장하고 있는데요”라고 묻자 “자체 시승격이 되겠어. 사람이 없는데”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선 “나 지금 고스톱 쳐야 돼. 이제 그만 가봐”라고 말했다.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얼른 옆에 있는 ‘양지다실’로 자리를 옮겼다. 냉커피를 시켰더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냉커피는 얼마 받아”라고 종업원에게 묻는다. “5000원이요.” 시골다방에서 냉커피 한 잔에 5000원이라, 씁쓸하다. 청주시내 만큼 받는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중년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본론을 꺼냈다. 20년 넘게 미원에서 2000평 정도되는 인삼밭을 일구고 있는 송모씨(60)는 “청원시를 따로 만들어봐야 그거지 뭐. 단체장이나 군의원들이 반대하지만 평민 입장에서 볼 때 통합하면 인구도 많아지고, 정부예산도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송씨는 자신의 사진이 나가면 ‘왕따’를 당한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뒷모습으로 대신하게 됐다.

“혐오시설 올까봐 걱정”
송씨는 그러나 “다만 지역민 입장에서는 혐오시설이 올까 걱정을 하기는 한다”면서도 “미원경제가 청원군에서 제일 나쁜 상황인데, 심정 같아서는 뭐라도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다방종업원은 빨래를 걷으러 가서 오지 않는다. 카운터에 커피값을 놓고 마지막 취재지인 부강으로 달렸다.

부강역앞 시내버스 승강장에 여자아이랑 서 있는 정남석씨(50)는 유보적이다. 정씨는 “통합하는게 맞지만 아직은 아니다”라면서 “대전이 대덕군을 통합할 때처럼 시기가 무르익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원시 승격에 대해서도 유보적이다. 정씨는 “현재로서는 청원시 승격도 아직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 적기를 5~6년 이후라고 추정했다.

취재를 마치고 오송을 통해 다시 회사로 돌아오면서 인터뷰에 응한 군민들의 표정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오늘 취재결과 통합찬성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반대의견과 유보의견을 낸 두 사람의 진지함도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청원군을 한바퀴 도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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