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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대신 선택한 농대, 고향을 살린 농학자로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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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대신 선택한 농대, 고향을 살린 농학자로 명성
  • 안태희 기자
  • 승인 2009.09.1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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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대학찰옥수수’ 보급 위해 미국서 땀흘려

   
괴산찰 종자개발 최봉호 박사

“그 흔한 핸드폰도 없는 사람이야.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농사짓는다는데 겨울이나 되어야 오겠지.” 여동생 최태호씨(64)의 말이다.

한평생 옥수수만을 연구하면서 고향 사람들의 생계에 큰 보탬을 준 만년 농학도가 있다. 괴산 대학찰옥수수의 종자를 개발해 보급한 최봉호 전 서울대 교수(72.육종학박사.미국 일리노이주 거주)는 올해도 미국의 일리노이를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괴산에 보급할 옥수수 종자 농사를 짓고 있다.  대학찰옥수수가 세계적인 먹을거리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대량으로 종자를 생산하기 위해 미국의 오지 두 곳에서 종자생산을 하기 위해서다.

대학찰옥수수는 지난 1991년 장연면 방곡리 출신인 최박사가 충남대교수로 재직중일 때   마땅한 소득원이 없던 고향사람들에게 간식용 옥수수 우량종자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2002년부터는 ‘연농 1호’라는 농산물등록번호를 달고 장연면 일원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 옥수수는 농약살포등의 관리가 전혀 필요 없어, 노동력 적게 들고, 옥수수가 수확이 끝나면, 콩이나, 배추, 감자등을 식재하여, 농지의 이용율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안성 맞춤이다.

특히 일반옥수수보다 통이 8~10줄로 가늘고 당도가 높고, 얇아 치아사이에 끼지 않고 담백한 맛이 타 지역서 생산되는 일반 옥수수보다 소비자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대학찰옥수수 덕분에 괴산지역까지 덩달아 유명해지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지금은 대학찰옥수수 정보화마을(http://banggok.invil.org)로 지정돼 마을전체가 새로운 농촌의 모델로 변모하고 있다.

최 박사가 대학찰옥수수를 연구개발하기까지는 그 자신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한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2남 2녀의 장남인 그는 초등학교도 월반을 통해 4년만에 졸업했으며, 충주농고를 졸업한 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다. 이후 농촌진흥청, 충남대교수, 서울대교수 등을 지내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옥수수박사’로 명성을 날렸다.

여동생 최씨는 “어릴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뙤약볕에서 엄청나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서 “1년 내내 아껴 살면서 그 해 겨울에 괴산군에 보급할 종자를 가지고 고향에 온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사람이 남다르다는 것은 옥수수 종자가격이 17년간 오르지 않았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약 100㎡에 파종할 양의 종자 가격이 지난 1991년 2만원에서 지난해 들어서야 2만 3000원으로 3000원을 올렸다. 가격인상도 환율인상 여파였다.

이런 그의 헌신속에서 괴산군은 대학찰옥수수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힘을 쏟기로 했다. 우선 앞으로는 괴산 대학찰옥수수 종자가 괴산 장연에만 보급될 예정이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보급했지만 다른 종자와 섞이면서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해 내년부터는 괴산에만 종자를 보급하기로 한 것.

황태진 장연옥수수작목반장은 ”대학찰옥수수는 사방 1km이내에 다른 종자의 옥수수가 재배되면 대학찰옥수수의 성분이 뺏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작물“이라면서 ”앞으로는 최박사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서 괴산군에서만 종자를 심고, 품질도 최상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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